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향수와 메마른 입술 사이, 정지용의 고향 옥천
그녀는 우아했고, 픽션의 세계에 어울렸지 - 소설가 서영은 선생과의 만남
[특집을 기획하며]포스트휴먼 시대의 징후와 전망 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그녀’와 인간의 미래 - 포스트휴먼의 윤리와 철학 휴먼 가늠자로서의 포스트휴먼 - ‘프랑켄슈타인’에서 ‘로봇’까지, 과학소설의 진화 테크노포비아, 인간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는가 -영화로 시각화된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먼 시대의 AI, 과학 기술의 발전 - 인공지능은 인간을 추월할 수 있을까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 나의 아버지 ①항일문학을 완성한 ‘최후의 분대장’ - 나의 아버지 김학철 ② 맑고 깊고 높은 - 나의 아버지 박두진 ③임방울과 부케 - 나의 아버지 설창수 ④ “하루 두 끼를 굶더라도 한 줄 소설을 쓰자” - 나의 아버지 최태응
첫 번째｜추락한 이카로스와의 만남 두 번째｜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 줘* 세 번째｜구슬약 네 번째｜글을 쓰다
야구의 도입과 최초의 한글 야구규칙·용어집 『야구규칙』
대구,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 -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북성로와 동성로
기획특집
기존에 없던 존재에 관한 과학소설 몇 편을 따라 읽는 일이 포스트휴먼의 본성을 파악하는 작업에 큰 도움은 없을지 모르나 한편으로 우리 자신의 본성을 조금 더듬어볼 계기 정도는 되어줄 것 같다.
영국의 과학소설가 브라이언 올디스는 메리 W. 셸리의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The Modern Prometheus)』(1818)이야말로 현대적 과학소설의 효시라 주장했다. 아닌 게 아니라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프란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 요하네스 케플러의 『꿈』과 같은 선조 과학소설이 세계 및 신세계를 공상의 수준에서 재구성한 것과 달리 셸리는 사유 부재의 기술적 진보가 자연의 섭리를 훼손할 때 발생할 재앙을 명백한 과학적 관점에서 경고하였다.
소설은 제네바의 천재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 죽은 자의 시신을 이용해 신장 2백44cm의 거인을 창조하는데 이 흉측한 괴물이 그만 난동을 부린다는 줄거리를 갖는다.‘말을 통 안 들어서(혹은 리모컨이 고장 나서) 일을 망쳐버리는 인조인간’이라는 매력적인 기본 틀은 이후 무수히 많은 서사작품들을 잉태한 인기모티프다.
괴수이야기 옷을 입고 있되 『프랑켄슈타인』의 사상적 함의는 매우 심오한 수준이며 당대 및 후대에 끼친 파장 또한 대단했다. 셸리는 인간 윤리에 대한 진지한 고뇌와 성찰 없이 우리가 과연 생명체를 창조하고 이를 우리 세계에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물었는데, 이 질문의 유효성은 놀랍게도 이백 년 가까이 흐르는 동안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과학소설의 거장 쥘 베른이 과학적 실현가능성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 반면 동시대의 라이벌허버트 G. 웰스는 훨씬 과감한 상상을 펼침으로써 메시지 전달 및 올바른 질문의 제시에 집중했다. 덕분에 과학소설이라기보다는 환상소설에 가깝다는 혐의도 곧잘 받아왔는데,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어서 잠수함이나 달 탐사 등 쥘 베른이 제시한 미래의 과학기술 대부분이 금방 실현 되었던 데 반해 웰스의 아이디어들은 실현 여부가 일정치 않다. 이를테면 『해방된 세계』의 원자폭탄 아이디어는 예견한 그대로 실현된 반면 『투명인간』은 미치오 카쿠에 의해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물리학의 법칙에 위배되지는 않는’, 그래서 ‘21~22세기 안에 어떻게든 실현될 가능성이높’은 기술로 분류되었고 『타임머신』은 역시 카쿠에 의해 ‘물리법칙의 위배 여부가 아직 분명치 않’아서 ‘수천, 또는 수백만 년 후에나 실현될 수 있는 기술’로 분류되었다. 용어가 점잖아서 그렇지 이 정도면 그냥 잠꼬대란 얘기다.
하지만 과학소설의 성패가 오로지 실현가능성에 달린 건 아니다. 『타임머신(Time Machine)』
(1895)은 ‘타임머신’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이 놀라운
단어는 독자들의 상상력을 극한까지 자극한다. 과학을 이용해 시간을 빨리 감거나 되돌릴 수 있다면, 그 밖에 못할 일이 또 뭐가 있겠는가? 작품은 시간여행이 가능한 기계를 발명한 어느 과학자의 고백을 담고 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먼 미래, 그러니까 80만 년 후의 지구는 번영을 누리는 고상한 영혼들의 유토피아가 결코 아니다. 인간은 종이 구별될 정도로 분열되어 있어서, 지하에 사는 흉측한 식인종 멀록, 지상에 살며 밝고 아름답지만 그래봤자 멍청하게도 멀록의 식량인 엘로이가 불안한 긴장 속에서 대립관계를 유지한다.
이것은 웰스가 살았던 시대의 계급갈등이 극한에 다다른 형태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풍경은 찰스 다윈의 주장과 정반대로 퇴화론을 연상케 한다. 상대를 잡아먹을만큼 분열된 우리의 후손, 한쪽은 멍청하고 다른 한쪽은 흉측한 미래의 인류가 바로 웰스가 바라본 포스트휴먼이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이된 것일까? 작중의 시간여행자는 진지하게 고민해본다.
“우선 우리 시대의 문제점들을 기반으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명확해질 것이라고 본다. 현재에는 그저 일시적이고 사회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차이가 점차 확대되었다고 하는 사실이 전체적인 입장을 푸는 열쇠였다.”
카렐 차페크는 프란츠 카프카 못지않게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체코 작가로서 국내에도 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로봇’이라는 보통명사는 바로 이 차페크의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R.U.R: Rossum’s Universal Robots)』(1920)에 처음으로 쓰였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형 인공생명체의 이름인 로봇(robot)은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체코 단어 로보타(rotoba)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야기의 근원에 놓인 질문이 인간과 노동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임을 암시한다.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은 백 년 전에 나온 작품임에도 오늘날 ‘로봇’하면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이미지의 원형을 제시하고 있는데, 각종 SF영화가 신명나게 우려먹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인조인간이 인간을 공격한다’는 모티프가 특히 그렇다. 이야기 속에서 인간들은 자신들의 노동을 대체하기 위해 로봇을 대량으로 생산하지만 이들은 인간에게 반기를 들고, 결국 건축가 한 명을 뺀 나머지 모든 인간을 말살해버린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수명이 다한 로봇들이 건축가에게 몰려가 수리를 요청하지만 이는 도둑맞은 휴대폰에 열심히 전화를 거는 꼴이다. 인간과 로봇 모두 멸망하게 된 상황에서 건축가는 감정을 느끼는 두 로봇을 발견하며, 그들이 새로운 세계의 아담과이브가 될 것임을 깨닫는다. ‘인간을 닮은 기계’와 인간 특유의 감정, 즉 인간성이 결합되어 포스트 휴먼이 탄생한 것이다.
『프랑켄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은 진지한 성찰의 기회 없이 급격하게 발전한 과학기술이 결국 우리의 숨통을 죄고 말 것이라는 절박한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인류를 대체할 포스트휴먼으로서의 로봇은 어디 먼 외계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의 욕망과 기술에 의해 창조되었다. 만약에 우리와 그들 사이를 구분하는 무언가를 찾아내지 못하거나 혹은 인식할 수 없다면,인간은 포스트휴먼의 대두 및 스스로의 도태에 관해 입을 열 자격이 없다. 카렐 차페크는 『도롱뇽과의 전쟁』 서문에서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작가의 의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 세계의 위험 상황을 심히 염려해 왔다. 나 자신이인간 문명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제거할 수는 없다 해도, 그러한 것들에 관해 생각이라도 해야만했다.”
과학소설도 당연히 전대로부터 누적되어 온 정신적, 문화사조적, 수사적 경험들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그로부터 얼마나 더 나아가느냐가 관건이다. 훌륭한 계승자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저 유명한 로봇공학(Robotics)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그 3원칙을 천명했는데, 다음과 같다.
① 로봇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으며, 인간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방관해서도 안 된다.
② 로봇은 ①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이 내리는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③ 로봇은 ①과 ②에 위배되지 않는 한,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이상의 3원칙은 간결하고 명료하며 이 자체로도 수많은 과학소설의 창작동기가 되어왔다. 원칙을 천명한 의도는 오해하기 어렵다. 인류와 로봇은 앞으로 공생할 수밖에 없으니, 인간을 학살하는 대신 부디 평화롭게 지내주십사 부탁하는 것이다. 인간이 하는 말 좀 잘 듣고. 대체 몇 권을 출간했는지 본인도 모른다고 했을 만큼 다작한 아시모프는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 )』(1976)을 통해 ‘사건 속의 포스트휴먼’이 아니라‘사건으로서의 포스트휴먼’을 다룬다. 논리회로에 문제가 좀 있는 가정부 로봇 앤드루 마틴이 이백 년에 걸쳐 천천히 인간을 배우고 인간을 소망하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도 찾으면서 인간이 되어간다는 내용의 이 소설은 불로불사를 포기하면서까지 인간이 되려는 로봇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그야말로 독자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기까지 되풀이한다.
따져보면 ‘인간을 소망하는 비인간’은 서사문학에서 드물지 않은 소재다. 인어공주도 그렇고 피노키오도 그러며 반만 년 전 한반도에 살았던 곰 한 마리 또한 인간이 되고 싶은 욕심에 쑥과 마늘로 골탕 먹은 바 있다. 그 자리에 기계가 들어섰을 뿐이다. 중요한 차이는, 물고기 여인이나 목각인형과 달리 기계는 은유가 아니라 그야말로 코앞에 놓인 현실이라는 점이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어쩌면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만약에 우리가 어떤 존재를 가리켜 포스트휴먼이라 칭한다면 이는 그들이 우리와 구별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들의 존재는 곧 우리를 정의하고 측량한다. 다시 말해 포스트휴먼에 관한 모든 논의는 언제나 오늘의 휴먼을 가늠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인간에게 무엇을 빼앗아 가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닌가.
우리는 왜 인간이려 하는가.
휴먼 가늠자로서의 포스트휴먼 - ‘프랑켄슈타인’에서 ‘로봇’까지, 과학소설의 진화
글 박형서 ㅣ 소설가, 고려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 계간 《대산문화》 편집자문위원. 1972년생
소설 『끄라비』 『새벽의 나나』 『자정의 픽션』 『핸드메이드 픽션』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 등
만약에 우리가 어떤 존재를 가리켜 포스트휴먼이라 칭한다면 이는 그들이 우리와 구별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들의 존재는 곧 우리를 정의하고 측량한다. 다시 말해 포스트휴먼에 관한 모든 논의는 언제나 오늘의 휴먼을 가늠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인간에게 무엇을 빼앗아 가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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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없던 존재에 관한 과학소설 몇 편을 따라 읽는 일이 포스트휴먼의 본성을 파악하는 작업에 큰 도움은 없을지 모르나 한편으로 우리 자신의 본성을 조금 더듬어볼 계기 정도는 되어줄 것 같다.
영국의 과학소설가 브라이언 올디스는 메리 W. 셸리의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The Modern Prometheus)』(1818)이야말로 현대적 과학소설의 효시라 주장했다. 아닌 게 아니라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프란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 요하네스 케플러의 『꿈』과 같은 선조 과학소설이 세계 및 신세계를 공상의 수준에서 재구성한 것과 달리 셸리는 사유 부재의 기술적 진보가 자연의 섭리를 훼손할 때 발생할 재앙을 명백한 과학적 관점에서 경고하였다.
소설은 제네바의 천재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 죽은 자의 시신을 이용해 신장 2백44cm의 거인을 창조하는데 이 흉측한 괴물이 그만 난동을 부린다는 줄거리를 갖는다.‘말을 통 안 들어서(혹은 리모컨이 고장 나서) 일을 망쳐버리는 인조인간’이라는 매력적인 기본 틀은 이후 무수히 많은 서사작품들을 잉태한 인기모티프다.
괴수이야기 옷을 입고 있되 『프랑켄슈타인』의 사상적 함의는 매우 심오한 수준이며 당대 및 후대에 끼친 파장 또한 대단했다. 셸리는 인간 윤리에 대한 진지한 고뇌와 성찰 없이 우리가 과연 생명체를 창조하고 이를 우리 세계에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물었는데, 이 질문의 유효성은 놀랍게도 이백 년 가까이 흐르는 동안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과학소설의 거장 쥘 베른이 과학적 실현가능성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 반면 동시대의 라이벌허버트 G. 웰스는 훨씬 과감한 상상을 펼침으로써 메시지 전달 및 올바른 질문의 제시에 집중했다. 덕분에 과학소설이라기보다는 환상소설에 가깝다는 혐의도 곧잘 받아왔는데,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어서 잠수함이나 달 탐사 등 쥘 베른이 제시한 미래의 과학기술 대부분이 금방 실현 되었던 데 반해 웰스의 아이디어들은 실현 여부가 일정치 않다. 이를테면 『해방된 세계』의 원자폭탄 아이디어는 예견한 그대로 실현된 반면 『투명인간』은 미치오 카쿠에 의해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물리학의 법칙에 위배되지는 않는’, 그래서 ‘21~22세기 안에 어떻게든 실현될 가능성이높’은 기술로 분류되었고 『타임머신』은 역시 카쿠에 의해 ‘물리법칙의 위배 여부가 아직 분명치 않’아서 ‘수천, 또는 수백만 년 후에나 실현될 수 있는 기술’로 분류되었다. 용어가 점잖아서 그렇지 이 정도면 그냥 잠꼬대란 얘기다.
하지만 과학소설의 성패가 오로지 실현가능성에 달린 건 아니다. 『타임머신(Time Machine)』
(1895)은 ‘타임머신’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이 놀라운
단어는 독자들의 상상력을 극한까지 자극한다. 과학을 이용해 시간을 빨리 감거나 되돌릴 수 있다면, 그 밖에 못할 일이 또 뭐가 있겠는가? 작품은 시간여행이 가능한 기계를 발명한 어느 과학자의 고백을 담고 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먼 미래, 그러니까 80만 년 후의 지구는 번영을 누리는 고상한 영혼들의 유토피아가 결코 아니다. 인간은 종이 구별될 정도로 분열되어 있어서, 지하에 사는 흉측한 식인종 멀록, 지상에 살며 밝고 아름답지만 그래봤자 멍청하게도 멀록의 식량인 엘로이가 불안한 긴장 속에서 대립관계를 유지한다.
이것은 웰스가 살았던 시대의 계급갈등이 극한에 다다른 형태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풍경은 찰스 다윈의 주장과 정반대로 퇴화론을 연상케 한다. 상대를 잡아먹을만큼 분열된 우리의 후손, 한쪽은 멍청하고 다른 한쪽은 흉측한 미래의 인류가 바로 웰스가 바라본 포스트휴먼이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이된 것일까? 작중의 시간여행자는 진지하게 고민해본다.
“우선 우리 시대의 문제점들을 기반으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명확해질 것이라고 본다. 현재에는 그저 일시적이고 사회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차이가 점차 확대되었다고 하는 사실이 전체적인 입장을 푸는 열쇠였다.”
‘로봇’이라는 보통명사는 바로 이 차페크의 희곡『로숨의 유니버설 로봇(R.U.R: Rossum’s Universal Robots)』(1920)에 처음으로 쓰였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형 인공 생명체의 이름인 로봇(robot)은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체코 단어 로보타(rotoba) 비롯된 것으로, 이야기의 근원에 놓인 질문이 인간과 노동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임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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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 차페크는 프란츠 카프카 못지않게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체코 작가로서 국내에도 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로봇’이라는 보통명사는 바로 이 차페크의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R.U.R: Rossum’s Universal Robots)』(1920)에 처음으로 쓰였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형 인공생명체의 이름인 로봇(robot)은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체코 단어 로보타(rotoba)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야기의 근원에 놓인 질문이 인간과 노동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임을 암시한다.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은 백 년 전에 나온 작품임에도 오늘날 ‘로봇’하면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이미지의 원형을 제시하고 있는데, 각종 SF영화가 신명나게 우려먹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인조인간이 인간을 공격한다’는 모티프가 특히 그렇다. 이야기 속에서 인간들은 자신들의 노동을 대체하기 위해 로봇을 대량으로 생산하지만 이들은 인간에게 반기를 들고, 결국 건축가 한 명을 뺀 나머지 모든 인간을 말살해버린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수명이 다한 로봇들이 건축가에게 몰려가 수리를 요청하지만 이는 도둑맞은 휴대폰에 열심히 전화를 거는 꼴이다. 인간과 로봇 모두 멸망하게 된 상황에서 건축가는 감정을 느끼는 두 로봇을 발견하며, 그들이 새로운 세계의 아담과이브가 될 것임을 깨닫는다. ‘인간을 닮은 기계’와 인간 특유의 감정, 즉 인간성이 결합되어 포스트 휴먼이 탄생한 것이다.
『프랑켄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은 진지한 성찰의 기회 없이 급격하게 발전한 과학기술이 결국 우리의 숨통을 죄고 말 것이라는 절박한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인류를 대체할 포스트휴먼으로서의 로봇은 어디 먼 외계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의 욕망과 기술에 의해 창조되었다. 만약에 우리와 그들 사이를 구분하는 무언가를 찾아내지 못하거나 혹은 인식할 수 없다면,인간은 포스트휴먼의 대두 및 스스로의 도태에 관해 입을 열 자격이 없다. 카렐 차페크는 『도롱뇽과의 전쟁』 서문에서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작가의 의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 세계의 위험 상황을 심히 염려해 왔다. 나 자신이인간 문명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제거할 수는 없다 해도, 그러한 것들에 관해 생각이라도 해야만했다.”
과학소설도 당연히 전대로부터 누적되어 온 정신적, 문화사조적, 수사적 경험들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그로부터 얼마나 더 나아가느냐가 관건이다. 훌륭한 계승자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저 유명한 로봇공학(Robotics)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그 3원칙을 천명했는데, 다음과 같다.
① 로봇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으며, 인간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방관해서도 안 된다.
② 로봇은 ①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이 내리는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③ 로봇은 ①과 ②에 위배되지 않는 한,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이상의 3원칙은 간결하고 명료하며 이 자체로도 수많은 과학소설의 창작동기가 되어왔다. 원칙을 천명한 의도는 오해하기 어렵다. 인류와 로봇은 앞으로 공생할 수밖에 없으니, 인간을 학살하는 대신 부디 평화롭게 지내주십사 부탁하는 것이다. 인간이 하는 말 좀 잘 듣고. 대체 몇 권을 출간했는지 본인도 모른다고 했을 만큼 다작한 아시모프는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 )』(1976)을 통해 ‘사건 속의 포스트휴먼’이 아니라‘사건으로서의 포스트휴먼’을 다룬다. 논리회로에 문제가 좀 있는 가정부 로봇 앤드루 마틴이 이백 년에 걸쳐 천천히 인간을 배우고 인간을 소망하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도 찾으면서 인간이 되어간다는 내용의 이 소설은 불로불사를 포기하면서까지 인간이 되려는 로봇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그야말로 독자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기까지 되풀이한다.
따져보면 ‘인간을 소망하는 비인간’은 서사문학에서 드물지 않은 소재다. 인어공주도 그렇고 피노키오도 그러며 반만 년 전 한반도에 살았던 곰 한 마리 또한 인간이 되고 싶은 욕심에 쑥과 마늘로 골탕 먹은 바 있다. 그 자리에 기계가 들어섰을 뿐이다. 중요한 차이는, 물고기 여인이나 목각인형과 달리 기계는 은유가 아니라 그야말로 코앞에 놓인 현실이라는 점이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어쩌면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만약에 우리가 어떤 존재를 가리켜 포스트휴먼이라 칭한다면 이는 그들이 우리와 구별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들의 존재는 곧 우리를 정의하고 측량한다. 다시 말해 포스트휴먼에 관한 모든 논의는 언제나 오늘의 휴먼을 가늠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인간에게 무엇을 빼앗아 가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닌가.
우리는 왜 인간이려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