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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추락한 이카로스와의 만남 두 번째｜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 줘* 세 번째｜구슬약 네 번째｜글을 쓰다
야구의 도입과 최초의 한글 야구규칙·용어집 『야구규칙』
대구,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 -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북성로와 동성로
대구,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 -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북성로와 동성로
글과 사진 박성원 ㅣ 소설가,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69년생
소설 『이상(異常) 이상(李箱) 이상(理想)』 『나를 훔쳐라』 『우리는 달려간다』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하루』 『고백』 등
도시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도심 뒷골목의 허름한 식당에도, 초고층 빌딩 안에 입주해 있는 사무실 안에도, 한적한 공원에서 유모차 안에 있는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노인의 눈망울에도 이야기들은 깃들어 있다.
시골에서는 풍경이나 가옥 그리고 이웃이 잘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시는 다르다. 도시는 빠르게 움직인다. 멀리 떨어져 있는 동네를 몇 달만 가지 않으면 지형이 바뀌었을 정도다. 오래된주택단지가 헐리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기도 한다. 그럴 때면 우리들은 늘 회상에 잠긴다.
좁은 골목에서 야구공을 주고받았던 기억,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콩나물을 사러 가던 동네슈퍼,준비물을 두고 와서 다시 집으로 뛰어가던 어린 두 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목욕탕으로 가던 어느 추운 겨울날 등을 떠올리곤 한다.
많은 사람들은 추억과 기억에서 쉽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과거를 복원하는 사업들이 요즘여러 도시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도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고 있다. 시골이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면 도시에는 여러 시간이 섞여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시간들이 섞여 있는 곳이 대구다. 일본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발전시킨 대도시였고, 한국 근현대사의 크고 작은 사건들과 함께 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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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부터 ‘달구벌’이라고 하여 대구가 있었지만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그리 크지 않았다. 경상도를 이루는 조합이 ‘경주’와 ‘상주’였던 만큼 대구는 작은 지방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일본인들이 상업거점으로 확보하기 위해 대구를 계획도시처럼 크게 발전시켰다. 대구는 그 태생부터가 이미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잘 아는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아마 우연이 아닐 것이다. 대구근대역사관을 방문하면 대구의 역사를 잘 알 수 있다. 대구근대역사관 건물은 1932년 일본의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건립된 것인데, 이 건물이 지금의 역사관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대구의 역사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인들의 거점도시로 발전되었기 때문에 도시 곳곳에 과거의 흔적들이 많이 묻어 있다. 대구역을 중심으로 북성로와 동성로까지 각종 관공서와 금융업 등이 들어오면서 대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1940년대 대구의 모습을 잘 그린 장편소설이 하나 있다. 바로 조두진 작가의 『북성로의 밤』이
라는 소설이다. 『북성로의 밤』은 북성로에 있는 ‘미나카이 백화점’을 배경으로 하는데, “미나카이백화점은 가장 놀랍고 화려한 곳이었다. 백화점은 오전부터 늦은 밤까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실내인데도 사람들은 신발을 신고 들어왔다. 놀라운 것은 수많은 인파가 신발을 신고 들어와도
안이 늘 깨끗하다는 사실이었다. 물건을 사러 오는 손님들은 잔치에 가는 사람들보다 더 멋을 부리고 있었다. 남자든 여자든 그들의 몸에서는 향기가 났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 규모의 미나카이 백화점은 경이였다. 백화점 북쪽 벽면에는 30개의 장방형 유리창이 붙어 있었다. 마치 얇은 유리가 그 거대한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보일러실과 정화조, 옥상의 물탱크와 피뢰침은 그 쓰임을 듣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건물뿐이 아니었다. 백화점 점원들은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종일 방긋방긋 웃었다”라는 대목은 당시 대구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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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대구 북성로를 다니던 사람들은 십중팔구 나그네였고, 이방인이었을 것이다. 조선시대부터 수도로 이어지던 서울과는 달리 갑자기 커진 도시였으니 아마도 많은 인구가 갑자기 유입되었을 터였다. 그들은 다른 누구를 위해, 어떤 목표나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다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살아왔고 살아남으려고 애썼다. 자기 뜻과 상관없이 전쟁을 겪어야만 했고, 전쟁 중에 살아남기 위해 어느 쪽이든 선택해서 살아야만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대구의 오래된 길 곳곳에는 그들의 삶과 흔적과 이야기들이 묻어 있는 것이다.
대구근대역사관은 일제 강점 시대에 가장 번화했던 북성로와 현재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동성로 사이에 있다. 동성로는 대구에 가면 반드시 봐야할 거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요즘에는 화려함의 명성이 서울이나 다른 대도시에도 곳곳에 있겠지만 70년대까지는 서울 사람들도 동성로의 번화함에 넋을 놓았다고 한다.
대구 동성로가 더욱 발전하게 된 것은 산업에 있다. 삼성의 출발은 대구다. 북성로 부근에서 ‘삼성상회’로 출발하였다. 또한 1970년대 성장 동력이었던 대규모의 섬유단지들이 대구에 있었다. 알다시피 섬유산업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다. 많은 노동자들, 특히 여성노동자들이 이때 대규모로 유입된다. 주말이면 휴식과 여가를 즐기기 위해 동성로로 몰렸고 동성로는 전국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중 하나가 되었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자주 찾는 곳이 있다. 바로 계산성당과 유명한 ‘대구 근대골목’이다. 동성로와 가까운 이점도 있지만 1백년이 넘는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있기 때문이다.
계산성당은 고딕형식의 건물로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로 쌓아올렸는데 1백년의 시간을 담은듯 느낌이 장중하다. 계산성당에서 조금만 길을 걸으면 근대 골목이 나온다. 근대 골목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서상돈 선생의 고택과 이상화 시인의 고택이 나온다. 많은 예술가들이 대구에서 출생하였고 이후에도 한국 문단의 거목들이 대구에서 많이 태어났는데 아마도 일제강점기이면서도 번화했고, 화려하면서도 서러웠던 시대의 굴곡이나 모순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구는 일본으로 말하자면 교토나 오사카와 비슷할 것이다. 일본에서 내 소설집이 번역, 출간되어 초청 받아 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나는 도심 곳곳을 걸어 다니며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갈 때마다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동경 사람들은 성미가 느긋하다고 한다. 그러나 교토나 오사카 사람들은 성격이 매우 급하고 보수적이다. 일본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폐를 넣으면 동전과 잔돈 지폐가 한꺼번에 와락 쏟아져 나오는 기계도 성격 급한 오사카 사람들이 가장먼저 개발했다고 한다. 동경 사람들은 그렇게 빠른 속도로 쏟아져 나오는 잔돈 앞에서 쩔쩔매기일쑤다.
또한 대학교 하면 동경 사람들은 동경대학 등을 최고로 여기지만 교토 사람들은 교토대학을 최고로 생각한다. 일본의 프로야구가 각 지역에서 뿌리 깊이 내릴 수 있었던 것도 한국보다 더한 지역감정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대구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대구가 최고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지니고 있다. 워낙 수도권으로 집중되어 지금은 할 말이 없지만 대구사람들에게 있어 대구는 여전히 한국의 중심이다. 향토기업과 향토백화점 때문에 전국적인 규모의 건설업과 백화점이 대구에 가장 늦게 생긴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서울에 있는 여러 대학들보다 대구에 있는 대학이 더 낫다고 생각하여 1980년대까지는 서울로 유학을 잘 보내지도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절반을 서울에서 그리고 나머지 절반을 고향인 대구에서 보냈다. 내 아내와 아이들은 서울이 고향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대구로 이사하는 것에 적잖은 고민을 했다. 얼마 전에 서울에서 지도하던 대학원생들이 인사차 대구로 찾아 왔을 때 나를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는 듯이 말했다. “선생님, 대구에도 지하철과 백화점이 있어요.”
놀란 것은 오히려 나였다. 아무리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을 벗어난 적이 없는 젊은 학생들이지만 아직까지 대구를 사과농사로 유명한 곳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구로 다시 돌아오자마자 내가 찾은 다른 하나는 LP를 팔던 동성로와 삼덕동이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더 이상 LP를 파는 곳은 없었다. 대구에서 보낸 내 젊음을 지탱해준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음악이었다.
소설 쓰는 힘을 나는 문학작품 위주의 독서와 음악을 통해서 얻는다.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것은 음악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60, 70년대 거장들의 음악을 녹음해서 들었다. 나와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형이 있는데 아마도 형이 즐겨 듣던 걸 어릴 때부터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당시 동성로에는 레코드 가게가 많았다. 녹음할 목록을 가지고 가면 주인이 삼촌의심부름을 왔는지 항상 묻곤 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좋아하는 음악은 60, 70년대 포크
음악이다.
내가 그 시대 포크 음악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저항성과 반(反)상업성 때문이다. 일찍이 평론가 김현은 “문학은 배고픈 거지 하나 구원하지 못한다. 문학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그런데 그 쓸모없음으로 해서 문학이 오히려 가치가 생긴다”고 했다.
좋은 음악들은 내 상상력을 자극한다. 나는 그 음악들을 들으면서 시대를 이해하고, 개인의 고통을 상상하고, 현재에 적용시킨다. 그래서 이야기를 만들고 서사를 확장시킨다.추억을 따라 동성로에 갔지만 이미 레코드 가게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래서 어렵게 찾은 곳이 아주 예전에 레코드 가게가 있던 자리에 문을 연 ‘미술사’라는 술집이었다. 이 술집에선 아직도 LP로 노래들을 들려준다. 2016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40, 50년 전의 노래들을 듣는다. 얼어 있던 노래들이 막 해동되어 술집 곳곳을 옛 기억 속으로 밀어 넣는다. 커다란 식빵처럼 생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옛 노래가 아니라 추억이다.
화려한 동성로 불빛을 바라보며 초등학교 때 선생님을 비롯해 수많은 선생님들과 학우들을 떠올린다. 곳곳에 묻어 있는 과거의 서사들을 끄집어내며 하나, 둘씩 되새겨본다. 친구들을 만나던 곳. 버스를 타고 지나가던 곳. 친척 어른으로부터 수십 년 전의 역사를 듣던 곳. 휴가 나온 친구를 만나던 곳. 세뱃돈을 받아 사고 싶은 장난감을 사러 가던 곳. 과거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아니라 지금, 현재와 사실상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찾아오는 손님들도 다양하다. 나보다 연배가 높은 어른부터 디지털 카메라에 담아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찾아오는 젊은 사람들까지, 그야말로 세대가 공존하고 있다. 음악뿐만 아니라 괘종시계며, 구형 카메라까지 가게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수십 년 전의 것이다.
이런 술집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바로 그리움으로의 회귀. 연어가자신의 출생지를 찾아 거친 물살과 역류를 뚫고 회귀하는 귀소본능 같은. 그래서 이 술집에선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있어도 금방 친해져 모두들 예전에 있었던 추억들을 곧잘 공유한다.
도시는 현재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공존을 보여준다. 특히 대구가 그러하고 그래서 나는 다시 대구로 와 살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