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향수와 메마른 입술 사이, 정지용의 고향 옥천
그녀는 우아했고, 픽션의 세계에 어울렸지 - 소설가 서영은 선생과의 만남
[특집을 기획하며]포스트휴먼 시대의 징후와 전망 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그녀’와 인간의 미래 - 포스트휴먼의 윤리와 철학 휴먼 가늠자로서의 포스트휴먼 - ‘프랑켄슈타인’에서 ‘로봇’까지, 과학소설의 진화 테크노포비아, 인간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는가 -영화로 시각화된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먼 시대의 AI, 과학 기술의 발전 - 인공지능은 인간을 추월할 수 있을까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 나의 아버지 ①항일문학을 완성한 ‘최후의 분대장’ - 나의 아버지 김학철 ② 맑고 깊고 높은 - 나의 아버지 박두진 ③임방울과 부케 - 나의 아버지 설창수 ④ “하루 두 끼를 굶더라도 한 줄 소설을 쓰자” - 나의 아버지 최태응
첫 번째｜추락한 이카로스와의 만남 두 번째｜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 줘* 세 번째｜구슬약 네 번째｜글을 쓰다
야구의 도입과 최초의 한글 야구규칙·용어집 『야구규칙』
대구,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 -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북성로와 동성로
바람이 분다
글 김지영 ㅣ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1972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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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씨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가 영국 맨부커상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의 최종 후보들 가운데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터키의 오르한 파묵, 장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로 잘 알려진 중국의 옌렌커 등이 포함됐다. 우리 작가가 이 세계적인 소설가들을 제쳤다. 깊이 침체됐던 한국문학에 어느 것보다 반가운 소식이자, 주춤했던 문학 한류의 가능성이 새롭게 점쳐졌다. 시상식 뒤 한 씨는 “한국에 좋은 작가들이 많다”고 말했다. 겸손한 소감으로도 들렸지만 2016년 봄 한국문학의 현주소를 가리키는 얘기이기도 했다. 마침 편혜영 씨의 『홀』과 『재와 빨강』이 미국 아케이드출판사에서 한꺼번에 출간 계약을 맺는 등 한국 작가들의 해외 진출 소식이 이어서 전해졌다.
인간의 폭력성에 저항해 식물이 되고자 하는 여성을 그린 『채식주의자』는 이번 계기를 통해 미학적 아름다움이 조명 받았다. 수상소식이 전해지면서 25만 부가 팔려나가는 등 독자들도 뜨겁게 반응했다. 그렇다고 ‘해외문학상 수상’이 뜬금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뉴스는 아니었다. 이 기쁜 소식이 있기까지 한국문학은 상승분위기를 타고 있었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고 있었다.
인간의 폭력성에 저항해 식물이 되고자 하는 여성을 그린『채식주의자』는 이번 계기를 통해 미학적 아름다움이 조명 받았다.수상소식이 전해지면서 25만 부가 팔려나가는 등 독자들도 뜨겁게 반응했다. 그렇다고 ‘해외문학상 수상’이 뜬금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뉴스는 아니었다. 이 기쁜 소식이 있기까지 한국문학은 상승 분위기를 타고 있었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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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운 겨울이 지나고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는 문장은, 올 들어 한국문학에선 절실히 와 닿는 비유였다. 어려운 시기가 지나고 안팎으로 분위기가 풀리는 때를 가리키는 이 상투적인 글귀가 그러했다. 지난해 한국문학은 지독한 ‘흑역사’를 겪었기 때문이다. 표절 사태에 이어 한국문학 출판자체가 얼어붙었던 시기를 지나면서다.
한국문학의 바람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불어왔다. 복간본 시집이 ‘터졌다.’ 올 초 교보문고 시집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권에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김소월 『진달래꽃』이 올랐다. 모두 일제시대 시집이고, 교과서에 실린 작품들이다. 인터넷 검색만 하면 볼 수 있는 시 작품들을, 복간본이라는 이유로 독자들이 구매했다는 얘기다. 『진달래꽃』의 실제 초판본이 한국문학 경매 사상 최고가(1억3500만 원)를 기록했다는 점, 윤동주 시인의 삶을 다룬 영화 <동주>가 개봉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점 등의 계기가 있었긴 했다. 그러나 독자들이 주목한 것은 ‘옛것을 되살려낸 물성’이었다. 때마침 LP레코드, 카세트테이프 등 이른바 음악을 담는 그릇의 옛 형태가 인기를 모으는 터였다. 인터넷에선 ‘소장 가치가 있고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는, 그야말로 책의 물성 자체에 대한 리뷰부터 ‘지금껏 만나왔던 윤동주에 그리움과 사랑이 더해지는 책’이라는, 옛것이 전해주는 정서에 관한 리뷰도 적지 않았다. 책을 내용보다는 소장가치로만 여긴다는 비판도 있지만, 필자는 책이 스마트폰과 맞서야 하는 시기에 점화됐던 이 열기를 책에 대한 애정의 시작으로 본 쪽이다.
● 본격문학, 반응이 오다
스위스 작가 프레드릭 베크만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의 독주였던 지난해 하반기를 지나 올들어 한국문학이 기지개를 켰다. 『오베…』의 후속작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와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베스트셀러 리스트 상위권을 차지한 가운데서도 한국문학의 ‘진격’이 만만치 않았다. 2월 말 윤대녕 씨의 장편 『피에로들의 집』이 출
간됐다. 윤대녕 씨에겐 11년 만의 장편소설이기도 했고 한국문학으로선 오랜만의 기지개였다.
『피에로들의 집』은 21세기의 고민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성북동 4층집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일도 사랑도 실패한 남자, 연인을 잃고 마음을 닫은 남자, 생부가 누구인지 몰라 마음이 힘든 여자 등 저마다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유사가족’을 이루면서 살아간다. 도시화 시대에 떠도는 난민들과 가족 해체의 이슈는 어느 때보다 문제적이다. ‘윤대녕표’ 주제의식이었던 ‘존재론적 고찰’을 내려놓고 리얼리즘에 가깝고 속도감 있는 내용도 변화로 읽혔다.
『피에로들의 집』은 초판 소진 열흘 만에 증쇄에 들어갔다. 발행부수는 1만 부(이하 5월 12일 현재).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한국문학 담당 MD인 김효선 씨는 “윤대녕 씨를 비롯해 한국문학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빠르다”고 전했다. 독자 반응이 빨리 온다는 건 초판 발행과 증쇄 간격이 지난해보다 짧다는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이 기세는 계속 이어졌다. 독자들의 눈길을 끌 만한 장편들이 선보였다. 편혜영 씨의 장편 『홀』, 김경욱 씨의 장편 『개와 늑대의 시간』이 잇따라 출간됐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편혜영 씨의 『홀』은 대학교수인 주인공이 교통사고를 당한 뒤 장모의 간병을 받으면서 겪는 이야기다. 아내를 잃고 그 자신도 사지가 마비된 주인공은 소설 내내 거의 움직임이 없지만 감정의 동선은 극적이다. 김경욱 씨의 『개와 늑대의 시간』은 1980년대 ‘우순경 사건’을 재현했다. 작가는 소설의 형식으로 르포를 택하는 대신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복원했다.
모두 쇄를 거듭해 편 씨의 소설은 5천부(2쇄), 김 씨의 소설은 6천부(3쇄)를 발행했다. 이기호 씨의 짧은 소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에 들어 맞는 작품이었다. 짧은 길이의 ‘웃픈’ 작품모음인 이 소설은 4만 부 이상 나가면서 호응을 얻었다. 차기작이 기대돼온 작가 정유정 씨의 새 소설 『종의 기원』도 예약판매만으로 인터넷서점 알라딘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등 기염을 토했다. 한강 씨의 수상은 이렇게 쌓인 좋은 소식들 중에서도 정점이었음은 물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