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향수와 메마른 입술 사이, 정지용의 고향 옥천
그녀는 우아했고, 픽션의 세계에 어울렸지 - 소설가 서영은 선생과의 만남
[특집을 기획하며]포스트휴먼 시대의 징후와 전망 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그녀’와 인간의 미래 - 포스트휴먼의 윤리와 철학 휴먼 가늠자로서의 포스트휴먼 - ‘프랑켄슈타인’에서 ‘로봇’까지, 과학소설의 진화 테크노포비아, 인간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는가 -영화로 시각화된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먼 시대의 AI, 과학 기술의 발전 - 인공지능은 인간을 추월할 수 있을까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 나의 아버지 ①항일문학을 완성한 ‘최후의 분대장’ - 나의 아버지 김학철 ② 맑고 깊고 높은 - 나의 아버지 박두진 ③임방울과 부케 - 나의 아버지 설창수 ④ “하루 두 끼를 굶더라도 한 줄 소설을 쓰자” - 나의 아버지 최태응
첫 번째｜추락한 이카로스와의 만남 두 번째｜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 줘* 세 번째｜구슬약 네 번째｜글을 쓰다
야구의 도입과 최초의 한글 야구규칙·용어집 『야구규칙』
대구,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 -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북성로와 동성로
「맨드라미 책」 외
최문자 ㅣ 시인. 1941년생
시집 『사과 사이사이 새』 『파의 목소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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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조심하고 무엇에 기대는가? 시를 쓰면서 매번 내가 나에게 하는 질문이다.
또 어떤 대상이 내 비유의 그물에 걸려들어 의미화되고 내 시의 일용할 양식이 되는가? 라는 질문도해본다. 그러나 여전히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나는 멈추고 내 시는 어쩔 수 없는 시로 남게 된다.
질문만 할 뿐 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냥 난해할 답의 조짐과 징후 상처들과의 소통만 기대할 뿐이다.
맨드라미 책
두꺼운 책을 들고 시장에 간다 첫 가게에서 흰 무명 양말을 샀다
너무 고요해서 줄 사람이 없었다 색색 양말들이 내가 든 책을 자꾸
바라본다 다음 가게 그 다음 가게는 지나치자 머뭇거려도 나를 알아
보지 못했다 이 시장에서 나는 가장 쓸모없는 자 여기선 나를 잃어
버릴 자신이 생긴다 나를 잃는 대신 꽃 무늬 우산을 잃어버렸다 양
말가게는 아닐 거야 그럼 버스? 꽃은 저 혼자 내릴 수 없었을 텐데
이제껏 잃어버린 것 중에 사랑이 가장 별로였다
안간힘을 썼는데도 별로였다
그때처럼 허기가 진다 모두 아슬아슬하게 떠들고 있었지만 책을
들고 나는 고요하다 고요해서 자주 넘어지거나 캄캄해도 고요하다
책은 여전히 무거웠다
쓸데없이 무거워지고 위험해지는 건 내가 자주 하던 연습
보건소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아무도 흰 양말을 신으러 오지 않
을 것이다
책 어느 페이지에서 나는 맨드라미 냄새
피 없이도 피가 가득했다
꽃구경
철길로부터 꽃잎이 넘어오는 집
이 집에다
나를 버리고 갔다
산 자들과 죽도록 어울리라고 일기까지 써놓고 갔다
꽃구경 가는 사람처럼
길고 길었던 기차 한 대처럼
그렇게 빠져나갔다 그는
탁자 위에
쓸쓸함에다 무음으로 타는 하얀 양초 한 자루도 두고 갔다
지치면 혼자 꺼지는 불꽃인줄도 모르고
혼자서 바싹 마른 양말
발로 차보고 싶은 발목 근처에서
아주 길게 기차 소리가 났다
굽이굽이 꽃 피는 역이 필요했다
꽃구경 가는 사람처럼 집을 나섰다
아주 긴 두 종류의 슬픔끼리 서로 마주 보는 레일처럼
무작정 기차를 기다렸다
슬픈 데가 다 굳도록 기차를 기다렸다
완행열차는 망각처럼 느리다
기차 한 대 들어선다
기차는 아픈 곳을 지나치고
꽃잎은 총력을 다해 철길에 떨어졌다
봄날엔
죽은 꽃잎도 빛난다 아주 잠깐
꽃도 죽으려 한 적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