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향수와 메마른 입술 사이, 정지용의 고향 옥천
그녀는 우아했고, 픽션의 세계에 어울렸지 - 소설가 서영은 선생과의 만남
[특집을 기획하며]포스트휴먼 시대의 징후와 전망 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그녀’와 인간의 미래 - 포스트휴먼의 윤리와 철학 휴먼 가늠자로서의 포스트휴먼 - ‘프랑켄슈타인’에서 ‘로봇’까지, 과학소설의 진화 테크노포비아, 인간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는가 -영화로 시각화된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먼 시대의 AI, 과학 기술의 발전 - 인공지능은 인간을 추월할 수 있을까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 나의 아버지 ①항일문학을 완성한 ‘최후의 분대장’ - 나의 아버지 김학철 ② 맑고 깊고 높은 - 나의 아버지 박두진 ③임방울과 부케 - 나의 아버지 설창수 ④ “하루 두 끼를 굶더라도 한 줄 소설을 쓰자” - 나의 아버지 최태응
첫 번째｜추락한 이카로스와의 만남 두 번째｜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 줘* 세 번째｜구슬약 네 번째｜글을 쓰다
야구의 도입과 최초의 한글 야구규칙·용어집 『야구규칙』
대구,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 -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북성로와 동성로
20세기 초반 달라진 여성작가의 목소리
- 비키 바움의 소설 『그랜드 호텔』
글 박광자 ㅣ 충남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 1945년생
저서 『괴테의 소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독일의 소설가 20인』, 역서 『벽』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남자, 그림이 되다』 등
비키 바움의 소설 『그랜드 호텔』
그레타 가르보 주연의 영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설 『그랜드 호텔』은 원래 제목이 『호텔 사람들(Menschen im Hotel)』(1929)로, 오스트리아의 여성작가 비키 바움(Vicki Baum)의 출세작이다. 1888년에 빈의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한 바움은 젊은 시절에는 하프 연주자로 활동했고,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작가활동을 시작했다. 40대 초반에 발표한 『그랜드 호텔』로 주목받는 작가가 된 그녀는 나치가 집권하자 미국으로 이주하여 30년 이상 할리우드에서 살았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그랜드 호텔』을 비롯하여 『비밀 없는 삶(Leben ohne Geheimnis)』(1932), 『발리에서의 삶과 죽음(Liebe und Tod auf Bali)』(1937), 『마리온은 살아있다(Marion lebt)』(1941), 『운명의 비행(Schicksalsflug)』(1947), 『진흙 속의 수정(Kristall im Lehm)』(1953) 등이 있다. 장편과 중편 소설 외에 영화 시나리오와 희곡도 썼는데, 대부분이 외국어로 번역되었다. 바움이 특히 관심을 가진 것은 예술과 학문 분야에서 활발하게 일하면서 성적인 해방을 추구하는 자립적인 여성, 소위 신여성이었다.
전통적으로 독일어권에서는 스칸디나비아의 나라들이나 영국, 프랑스보다 여성작가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 일찍이 실러를 위시한 명망 있는 작가들이 여성작가들의 등장을 경고하고 비판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몇몇 여성작가들은 가명, 혹은 남성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기존의 독문학사에서 인정을 받은 소수의 여성작가의 경우,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글쓰기가 남성적인 필치와 관점을 보여준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는일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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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의 소설 역시 많은 부수가 팔렸고 특히 『그랜드 호텔』은 2백만 부가 팔렸다. 하지만 20세기 중반까지도 대중문학으로 폄하되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른바 여성적인 글쓰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이다. 남녀평등, 여성문학, 페미니즘 같은 슬로건이 이미 색이 바랜 21세기에 우리는 바움의『그랜드 호텔』을 20세기 초반의 대표적인 여성소설, 대중소설뿐만 아니라 일종의 시대소설,사회소설로 읽을 수 있다. 여기에는 바이마르 공화국, 즉 1차 대전 직후부터 히틀러 집권 사이(1919-1933) 독일의 사회상이 수도 베를린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전성기가 지난 발레리나 그루진스카야이다. 또 다른 장기 투숙자는 전쟁터에서 얼굴의 반을 잃은 오터른슐락 박사이다. 투숙객 중 최고의 멋쟁이인 가이거른 남작은 외양만 그럴듯할 뿐 실은 빈털터리이다. 어느 날 크링엘라인이라는 가난한 경리직원이 이 호텔에 투숙하고, 얼마 뒤에는 그의 상관 프라이징 사장이 이 호텔에 투숙한다.
그루진스카야가 어느 날 수면제로 자살을 시도 한다. 그날 밤 남작은 목걸이를 훔치러 그녀의 방에 들어갔다가 발각되자 자신이 그루진스카야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것을 고백하기 위해 들어 왔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루진스카야는 사랑에 빠지고, 남작은 다음 공연지인 빈으로 그녀를 따라 가겠다고 약속한다. 크링엘라인에게서 돈을 훔치는데 실패한 남작은 다음번 희생자로 프라이징을 택한다. 하지만 몸싸움에서 남작은 사고로 목숨을 잃고 프라이징은 살인죄로 체포된다. 모두가 떠나고 호텔에는 오터른슐락 박사만이 혼자 남는다. 그리고 먼저 빈으로 떠난 그루진스카야는 그동안 베를린의 호텔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남작을 애타게 기다린다.
※ 『그랜드 호텔』은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은 필자의 번역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로 출간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