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향수와 메마른 입술 사이, 정지용의 고향 옥천
그녀는 우아했고, 픽션의 세계에 어울렸지 - 소설가 서영은 선생과의 만남
[특집을 기획하며]포스트휴먼 시대의 징후와 전망 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그녀’와 인간의 미래 - 포스트휴먼의 윤리와 철학 휴먼 가늠자로서의 포스트휴먼 - ‘프랑켄슈타인’에서 ‘로봇’까지, 과학소설의 진화 테크노포비아, 인간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는가 -영화로 시각화된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먼 시대의 AI, 과학 기술의 발전 - 인공지능은 인간을 추월할 수 있을까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 나의 아버지 ①항일문학을 완성한 ‘최후의 분대장’ - 나의 아버지 김학철 ② 맑고 깊고 높은 - 나의 아버지 박두진 ③임방울과 부케 - 나의 아버지 설창수 ④ “하루 두 끼를 굶더라도 한 줄 소설을 쓰자” - 나의 아버지 최태응
첫 번째｜추락한 이카로스와의 만남 두 번째｜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 줘* 세 번째｜구슬약 네 번째｜글을 쓰다
야구의 도입과 최초의 한글 야구규칙·용어집 『야구규칙』
대구,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 -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북성로와 동성로
한국과 베트남 정서의 접점
글 배양수 ㅣ 부산외국어대학교 동남아학부 교수. 1959년생
역서 『시인, 강을 건너다』 『하얀 아오자이』 등
|
베트남어역 고은 시집 『만인보』
베트남은 시의 나라다. 구비문학은 물론 기록문학이 시작되는 11세기부터 지금까지 베트남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시는 그들의 정서를 담아내는 주요한 수단이었다. 이는 전쟁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20세기의 3/4을 전쟁 속에서 보낸 민족이었지만 시는 늘 그들 곁에 있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시는 “밥과 같은 것”이며, 그들의 조상들은 “시 짓는 일과 적과 싸우는 일”만 알았다고 할 정도로 시는 그들의 일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동안 우리는 그들이 시를 사랑하고 시를 잘 짓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정형시를 완성했다. 6자와 8자가 한 짝을 이루는 6·8구체라는 독특한 정형시와 7자, 7자, 6자, 8자 행이 한 세트를 이루는 쌍칠6·8구체 시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정형시는 단순히 글자 수만 맞추는 것이 아니다. 글자 수는 물론 운과 성조도 맞추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아주 복잡한 정형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많은 시인들이 그러한 정형시를 쓰고 있다.
이번에 출판된 고은의 『만인보』는 베트남에서 줄기차게 한국문학 특히 한국의 시를 번역소개해 온 번역가 레 당 호안이 번역하였다. 이 번역으로 그는 여섯 번째의 한국 시집을 번역하게 되었다. 그동안 그는 『님의 침묵』, 『모란이 피기까지는』, 『내일의 노래』, 『누구를 위하여』, 『만인보』 등을 번역하였다. 수교 이후 베트남에서 출판된 9권의 시집 가운데 6권을 번역한 것이다. 그는 1964년에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1년 동안 한국어를 배운 다음, 김책공업대학 유색야금학부에 입학하여 5년을 공부했다. 그리고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한 이후로 집중적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공부해왔다.
고은의 시가 베트남에 처음 소개된 것은 2001년 『한국현대시인 5인 선집』을 통해서였다. 이 책은 시인 응웬 꽝 티에우가 영어를 베트남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그리고 2010년에 소개된 『내일의 노래』에 이어 세 번째 작품집으로 『만인보』가 나오게 되었다. 베트남에서 출판된 『만인보』는 1~10권 중에서 1백8수를 선택하여 한 권으로 만든 선집이다. 이 1백8편의 시는 고은 시인의 추천에 의해 선정한 것이라고 한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한국과 베트남 정서에 적합할만한 시를 골랐다고 했다. 역자는 한국과 베트남에서 고은 시인을 여러 번 만났고, 번역 작품의 선정에도 큰 도움을 받는 행운을 갖게 되었음을 자랑하고 있다. 시를 번역하는 동안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이메일을 통해서, 고은 시인의 부인인 이상화 교수에게 물으면서 수정했다고 한다. 따라서 번역의 신뢰도가 높은 작품이다. 만인보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 관한 우리 얘기이다. 그런데 바로 그 다양한 우리들의 얘기가 베트남에도 있다는 것이다. 가난 속에서 희망을 갖고 역사를 만들어간 고향 사람들의 얘기, 고난의 세월을 견딘 민초들의 얘기, 친척들의 얘기 등이 비슷한 현대사의 질곡을 가로질러 온 베트남 사람들에게도 통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베트남은 기본적으로 논농사 문화를 기반으로, 유교와 불교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동남아 불교가 대부분 소승불교인데 비해서 베트남은 대승불교가 80%를 차지할 정도로 중국, 한국 불교와 유사하다. 이러한 문화적 기반의 유사성은 한국과 베트남 문화 및 정서의 유사성을 만들어냈으며, 서로 상대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을 갖게 되었다. 베트남은 중국, 한국, 일본과 함께 스스로 동아시아임을 표방한다. 이는 지리적으로는 동남아에 속하지만 문화적으로는 동아시아라는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바탕에서 우리 한국 드라마가 일찍이 베트남 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게 되었는데, 베트남 사람들은 우리 드라마를 통해 양국의 도덕적 기준이 유사하다는 점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드라마와 K팝, 영화를 통한 한류가 베트남에서 보편적인 문화현상이 되었다고 한다면 문학작품을 통한 베트남 사람들의 한국문화 이해 현상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서민들의 애환과 얘기가 있는 『만인보』는 그 정점에서 양국민의 정서가 맞닿는 접점이 될 것이다.
※ 베트남어역 『만인보』는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을 받아 레 당 호안의 번역으로 베트남 작가협회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