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향수와 메마른 입술 사이, 정지용의 고향 옥천
그녀는 우아했고, 픽션의 세계에 어울렸지 - 소설가 서영은 선생과의 만남
[특집을 기획하며]포스트휴먼 시대의 징후와 전망 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그녀’와 인간의 미래 - 포스트휴먼의 윤리와 철학 휴먼 가늠자로서의 포스트휴먼 - ‘프랑켄슈타인’에서 ‘로봇’까지, 과학소설의 진화 테크노포비아, 인간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는가 -영화로 시각화된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먼 시대의 AI, 과학 기술의 발전 - 인공지능은 인간을 추월할 수 있을까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 나의 아버지 ①항일문학을 완성한 ‘최후의 분대장’ - 나의 아버지 김학철 ② 맑고 깊고 높은 - 나의 아버지 박두진 ③임방울과 부케 - 나의 아버지 설창수 ④ “하루 두 끼를 굶더라도 한 줄 소설을 쓰자” - 나의 아버지 최태응
첫 번째｜추락한 이카로스와의 만남 두 번째｜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 줘* 세 번째｜구슬약 네 번째｜글을 쓰다
야구의 도입과 최초의 한글 야구규칙·용어집 『야구규칙』
대구,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 -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북성로와 동성로
기획특집
2016년 상반기, 박스오피스의 상위권에 위치한 할리우드 영화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데드풀>,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 <엑스맨 : 아포칼립스> 등 단연 슈퍼히어로 장르이다. 이상의 영화들이 보여주는 세상에서 평범한 인간이 낄 자리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주먹 한 방에 건물이 붕괴되는 배트맨과 슈퍼맨의 싸움에서 여기자는 너무나 초라하고 작아 보인다. 신적인 존재 원더우먼이나 되니까 이들의 싸움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
1. 사이언스픽션 영화의 포스트휴먼
●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사이언스픽션 영화들은 크게 네 종류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외계에서 혹은 과거에서 온 신적인 존재(슈퍼맨, 원더우먼, 토르 등), 자연적으로 유전자가 특별한 뮤턴트(엑스맨 등), 약물, 방사선 등 과학적인 이유로 탄생된 돌연변이(캡틴 아메리카, 데드풀, 앤트맨, 헐크, 스파이더맨 등) 그리고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인간(배트맨, 아이언맨 등). 이중 포스트휴먼이라 부를만한 범주는 과학기술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세 번째와 네 번째 경우라 정의할 수 있다.
학계에서 사용하는 포스트휴먼이란 용어는 급격한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인류의 생활방식, 신체 및 정신적 변화, 기술환경을 염두에 두고, 시간이 더 지나면 현 인류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종류의 인류가 등장할 것이라는 가정을 포함한다. 현재의 평범한 인간을 휴먼으로 부른다면,현 인류 이후 다가올 종을 포스트휴먼이라 부르는 것이다. 넓게는 유전공학 기술로 인간 종을 변형하거나,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거나 혹은 인간을 복제할 수 있다는 가능성, 컴퓨터 및 나노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공지능, 로봇, 사이버스페이스가 너무나 저렴하고 쉽게 보편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 바이오테크놀로지와 사이버테크놀로지가 만들어 낼 변화, 요컨대 첨단 과학기술이 변화시킬 미래를 사는 인간들을 지칭한다.
좀 더 협의의 정의를 사용하자면, 포스트휴머니즘 연구가 캐서린 헤일스를 따라, 포스트휴먼은 지능을 가진 기계와 매끄럽게 접합될 수 있는 인간 형태를 말하며, “신체를 가진 존재와 컴퓨터 시뮬레이션, 사이버네틱스 메커니즘과 생물학적 유기체, 로봇의 목적론과 인간의 목표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나 절대적인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1) 어떤 단계를 지칭한다고 하겠다. 가령 배트맨이나 아이언맨을 떠올려보자. 이 두 명의 슈퍼히어로는 첨단 장비를 갖춘 인간으로서 자연적으로 타고난 능력보다, 기술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되면서 강력한 힘을 얻게 되는 존재들이다. 이들을 슈퍼히어로 대신 포스트휴먼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 영화적인 기표가 숨기는 포스트휴먼의 의미
● 사이언스픽션 영화가 CGI(컴퓨터그래픽스이미지) 기술 발전 정도에 맞물려 대중적 인기를 얻는 것은 무엇보다 시각적 재미 때문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디지털 기술로 완벽하게 재현된 하이퍼리얼(hyper-real)한 세상이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합성 리얼리즘’을 떠올릴 수 있다. 합성 리얼리즘이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현실의 대상과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리얼’하게 대상을 만들어 내는 경향을 지칭한다. <터미네이터>의 로봇이나 <아이언맨>의 슈트 등은 분명 CGI 기술로 작업한 이미지이지만, 관객은 어디까지가 합성이고 어디까지가 실사인지 구분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평화 유지 프로그램으로 개발된 인공지능 울트론은 진화를 거듭하다 스스로 기계 몸을 취한다. 이야기 차원에서 보면 울트론이 자신의 의식과 결합될 몸을 필요로 하는 대목이나, 영화적인기표 차원에서 보면 합성 리얼리즘의 시각적인 문제가 개입되는 대목이다. 인간의 피부색을 쓸지,얼굴 형태를 둥그렇게 할지, 눈동자를 넣을지, 무슨 색을 선택할지, 신체 사이즈는 어떻게 할지 등. 결정할 사항은 무궁무진한데, 그럴싸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믿게 할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가장 쉬운 해결책이 동원된다. 즉 관습에 기대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본 울트론의 얼굴은 악마의 형상을 닮아 있다. 중세 수도원의 악마 조각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귀같이 생긴 뿔이라든지 옆으로 길게 뻗은 눈꼬리 그리고 결정적으로 빨간색눈동자. 여기에 거대한 신체 사이즈.
이러한 형상의 몸을 로앵글로 보여주면, 관객은 마치 우러러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액션과 결합되면서, 기계 몸은 ‘강인함’이라는 특성과도 연결된다. 하늘을 나르고 레이저를 뿜는 그는 평범한 인간은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존재이다. 실제 <어벤져스>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이 울트론을 이야기하면서 자주 언급하는 단어는 ‘진화’, ‘파괴’, ‘멸종’이다. 상당량의 러닝타임을 차지하는 전투신은 모두 울트론 VS 인간을 보호하는 슈퍼히어로라는 이분법을 전제로 한다. 강력한 포스트휴먼의 등장에 슈퍼히어로들이 힘을 합해 ‘휴먼’들을 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평범한 인간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 포스트휴먼의 등장으로 멸종될 위기에 처한 존재로 위치 지어진다. 이는 다수의 사이언스픽션 영화에서 사용하는 관습화된 의미, 즉 테크노포비아(thechophobia)에 해당한다.
3. 영화 속 포스트휴먼이 시사하는 점
● ‘테크노포비아’는 사이언스픽션 영화에서 가장 자주 내포되는 의미일 것이다. 테크노포비아는 과학기술로 탄생한 존재를 두려운 대상으로 표상하는 과정에 녹아들어 있는 우리의 두려움이기도 하다. 그들은 아직 체험할 수 없는 미지의것이기에 두렵고, 혹은 너무나 새로운 낯선 것이기에 공포의 대상이다.
하지만 ‘낯섦’은 사실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따라 때로는 호기심과 기대로, 때로는 필수불가결한 조건으로, 때로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다가오게 된다. 다시 말해 낯섦이 곧 두려움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이언스픽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보는 사람들이 반드시 생각해야할 점은 ‘표현이 곧 의미를 만든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처럼, 다수의 사이언스픽션 영화에서처럼,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등장할 수 있을 포스트휴먼을 너무나 손쉽게 살인하는 기계로만 표현한다면, 포스트휴먼은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두려움은 엄밀히 따지면 맹목적인 믿음에서 발생한다. 과학기술이 발전되면 분명 인간보다 더 강력한 존재가 등장할 것이라는 맹신. 이러한 맥락에서 기술결정론이 대두된다. 기술결정론은 마치 테크놀로지가 정치, 경제, 문화예술 등 우리 삶의 다른 영역들보다 우선한다는 주장인데, 이는 어찌 보면 전체주의를 낳는 발상일 수 있다. 사이언스픽션 영화가 막대한 제작비로 인해 점점 더 할리우드에만 편중되는 것처럼, 영화와 전체주의가 결합되면 한 가지 표현만 남게 된다. 불행히도 사이언스픽션 영화는 이미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움을 기대했다가, 얼마나 많이 실망했던가? 비슷비슷한 내러티브 구성과 관습적인 선악 구도, 인간과 비인간(과학기술로 탄생한 존재들)의 대립, 난무하는 폭발신과 전투신, 반복적인 앵글 및 화면 연출, 포스트휴먼의 유사한 시각적 구현 등. 사실 포스트휴먼이란 용어와 개념은 인간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헤일스는 포스트휴먼이 전통적인 인간관의 소멸 내지는 해체과정, 인간성의 새로운 버전이 생성되는 과정의 또 다른 이름에 해당할 따름이라 설명한다. 요컨대 해체된 인간의 자리에 들어찰 복수의 다양한 포스트휴먼을 상상하고 그리하여 삶의 다양성을 꿈꾸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사유해야할 방향이라는 주장이다.
달라지는 혹은 달라질 인간에 관해 그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만을 반복해서 이야기해야 할까?
1) 캐서린 헤일스,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 허진 옮김, 플레닛, 2013, 24쪽
2) 빌렘 플루서, 『피상성 예찬』, 김성재 옮김, 커뮤니케이션 북스, 2006, 301~304쪽
테크노포비아, 인간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는가 -영화로 시각화된 포스트휴먼
글 이수진 ㅣ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1974년생
저서 『크리스티앙 메츠』 『기호와 기호 사이, 이미지들 너머』 『Une lecture du film d’Im Kwon-Taek』 『만화기호학』,
역서 『영화의 의미작용에 관한 에세이 1, 2』 『상상적 기표』 『이미지, 모험을 떠나다』 등
두려움은 엄밀히 따지면 맹목적인 믿음에서 발생한다. 과학기술이 발전되면 분명 인간보다 더 강력한 존재가 등장할 것이라는 맹신. 이러한 맥락에서 기술결정론이 대두된다. 기술결정론은 마치 테크놀로지가 정치, 경제, 문화예술 등 우리 삶의 다른 영역들보다 우선한다는 주장인데, 이는 어찌 보면 전체주의를 낳는 발상일 수 있다.
|
2016년 상반기, 박스오피스의 상위권에 위치한 할리우드 영화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데드풀>,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 <엑스맨 : 아포칼립스> 등 단연 슈퍼히어로 장르이다. 이상의 영화들이 보여주는 세상에서 평범한 인간이 낄 자리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주먹 한 방에 건물이 붕괴되는 배트맨과 슈퍼맨의 싸움에서 여기자는 너무나 초라하고 작아 보인다. 신적인 존재 원더우먼이나 되니까 이들의 싸움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
1. 사이언스픽션 영화의 포스트휴먼
●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사이언스픽션 영화들은 크게 네 종류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외계에서 혹은 과거에서 온 신적인 존재(슈퍼맨, 원더우먼, 토르 등), 자연적으로 유전자가 특별한 뮤턴트(엑스맨 등), 약물, 방사선 등 과학적인 이유로 탄생된 돌연변이(캡틴 아메리카, 데드풀, 앤트맨, 헐크, 스파이더맨 등) 그리고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인간(배트맨, 아이언맨 등). 이중 포스트휴먼이라 부를만한 범주는 과학기술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세 번째와 네 번째 경우라 정의할 수 있다.
학계에서 사용하는 포스트휴먼이란 용어는 급격한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인류의 생활방식, 신체 및 정신적 변화, 기술환경을 염두에 두고, 시간이 더 지나면 현 인류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종류의 인류가 등장할 것이라는 가정을 포함한다. 현재의 평범한 인간을 휴먼으로 부른다면,현 인류 이후 다가올 종을 포스트휴먼이라 부르는 것이다. 넓게는 유전공학 기술로 인간 종을 변형하거나,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거나 혹은 인간을 복제할 수 있다는 가능성, 컴퓨터 및 나노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공지능, 로봇, 사이버스페이스가 너무나 저렴하고 쉽게 보편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 바이오테크놀로지와 사이버테크놀로지가 만들어 낼 변화, 요컨대 첨단 과학기술이 변화시킬 미래를 사는 인간들을 지칭한다.
좀 더 협의의 정의를 사용하자면, 포스트휴머니즘 연구가 캐서린 헤일스를 따라, 포스트휴먼은 지능을 가진 기계와 매끄럽게 접합될 수 있는 인간 형태를 말하며, “신체를 가진 존재와 컴퓨터 시뮬레이션, 사이버네틱스 메커니즘과 생물학적 유기체, 로봇의 목적론과 인간의 목표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나 절대적인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1) 어떤 단계를 지칭한다고 하겠다. 가령 배트맨이나 아이언맨을 떠올려보자. 이 두 명의 슈퍼히어로는 첨단 장비를 갖춘 인간으로서 자연적으로 타고난 능력보다, 기술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되면서 강력한 힘을 얻게 되는 존재들이다. 이들을 슈퍼히어로 대신 포스트휴먼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
2. 영화적인 기표가 숨기는 포스트휴먼의 의미
● 사이언스픽션 영화가 CGI(컴퓨터그래픽스이미지) 기술 발전 정도에 맞물려 대중적 인기를 얻는 것은 무엇보다 시각적 재미 때문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디지털 기술로 완벽하게 재현된 하이퍼리얼(hyper-real)한 세상이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합성 리얼리즘’을 떠올릴 수 있다. 합성 리얼리즘이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현실의 대상과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리얼’하게 대상을 만들어 내는 경향을 지칭한다. <터미네이터>의 로봇이나 <아이언맨>의 슈트 등은 분명 CGI 기술로 작업한 이미지이지만, 관객은 어디까지가 합성이고 어디까지가 실사인지 구분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평화 유지 프로그램으로 개발된 인공지능 울트론은 진화를 거듭하다 스스로 기계 몸을 취한다. 이야기 차원에서 보면 울트론이 자신의 의식과 결합될 몸을 필요로 하는 대목이나, 영화적인기표 차원에서 보면 합성 리얼리즘의 시각적인 문제가 개입되는 대목이다. 인간의 피부색을 쓸지,얼굴 형태를 둥그렇게 할지, 눈동자를 넣을지, 무슨 색을 선택할지, 신체 사이즈는 어떻게 할지 등. 결정할 사항은 무궁무진한데, 그럴싸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믿게 할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가장 쉬운 해결책이 동원된다. 즉 관습에 기대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본 울트론의 얼굴은 악마의 형상을 닮아 있다. 중세 수도원의 악마 조각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귀같이 생긴 뿔이라든지 옆으로 길게 뻗은 눈꼬리 그리고 결정적으로 빨간색눈동자. 여기에 거대한 신체 사이즈.
이러한 형상의 몸을 로앵글로 보여주면, 관객은 마치 우러러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액션과 결합되면서, 기계 몸은 ‘강인함’이라는 특성과도 연결된다. 하늘을 나르고 레이저를 뿜는 그는 평범한 인간은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존재이다. 실제 <어벤져스>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이 울트론을 이야기하면서 자주 언급하는 단어는 ‘진화’, ‘파괴’, ‘멸종’이다. 상당량의 러닝타임을 차지하는 전투신은 모두 울트론 VS 인간을 보호하는 슈퍼히어로라는 이분법을 전제로 한다. 강력한 포스트휴먼의 등장에 슈퍼히어로들이 힘을 합해 ‘휴먼’들을 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평범한 인간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 포스트휴먼의 등장으로 멸종될 위기에 처한 존재로 위치 지어진다. 이는 다수의 사이언스픽션 영화에서 사용하는 관습화된 의미, 즉 테크노포비아(thechophobia)에 해당한다.
3. 영화 속 포스트휴먼이 시사하는 점
● ‘테크노포비아’는 사이언스픽션 영화에서 가장 자주 내포되는 의미일 것이다. 테크노포비아는 과학기술로 탄생한 존재를 두려운 대상으로 표상하는 과정에 녹아들어 있는 우리의 두려움이기도 하다. 그들은 아직 체험할 수 없는 미지의것이기에 두렵고, 혹은 너무나 새로운 낯선 것이기에 공포의 대상이다.
하지만 ‘낯섦’은 사실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따라 때로는 호기심과 기대로, 때로는 필수불가결한 조건으로, 때로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다가오게 된다. 다시 말해 낯섦이 곧 두려움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이언스픽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보는 사람들이 반드시 생각해야할 점은 ‘표현이 곧 의미를 만든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처럼, 다수의 사이언스픽션 영화에서처럼,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등장할 수 있을 포스트휴먼을 너무나 손쉽게 살인하는 기계로만 표현한다면, 포스트휴먼은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두려움은 엄밀히 따지면 맹목적인 믿음에서 발생한다. 과학기술이 발전되면 분명 인간보다 더 강력한 존재가 등장할 것이라는 맹신. 이러한 맥락에서 기술결정론이 대두된다. 기술결정론은 마치 테크놀로지가 정치, 경제, 문화예술 등 우리 삶의 다른 영역들보다 우선한다는 주장인데, 이는 어찌 보면 전체주의를 낳는 발상일 수 있다. 사이언스픽션 영화가 막대한 제작비로 인해 점점 더 할리우드에만 편중되는 것처럼, 영화와 전체주의가 결합되면 한 가지 표현만 남게 된다. 불행히도 사이언스픽션 영화는 이미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움을 기대했다가, 얼마나 많이 실망했던가? 비슷비슷한 내러티브 구성과 관습적인 선악 구도, 인간과 비인간(과학기술로 탄생한 존재들)의 대립, 난무하는 폭발신과 전투신, 반복적인 앵글 및 화면 연출, 포스트휴먼의 유사한 시각적 구현 등. 사실 포스트휴먼이란 용어와 개념은 인간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헤일스는 포스트휴먼이 전통적인 인간관의 소멸 내지는 해체과정, 인간성의 새로운 버전이 생성되는 과정의 또 다른 이름에 해당할 따름이라 설명한다. 요컨대 해체된 인간의 자리에 들어찰 복수의 다양한 포스트휴먼을 상상하고 그리하여 삶의 다양성을 꿈꾸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사유해야할 방향이라는 주장이다.
달라지는 혹은 달라질 인간에 관해 그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만을 반복해서 이야기해야 할까?
컴퓨터로 선, 평면 그리고 입체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무엇을 만드는가? 그들은 가능성들을 실현시킨다. (…) 그들은 가능성들로부터 더 촘촘하게 집합될수록 더 효과적인 대안적인 세계들을 ‘설계한다.’ (…) 대안적인 세계들은 아름다운 것으로 느껴질 수 있고, 이점에 있어서 그러한 세계들은 그 내부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들이기도 하다. ‘디지털 가상’은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주위와 우리 내부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공허의 밤을 밝혀주는 빛이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은 그러한 무(無)를 향해 무(無) 속으로 대안적인 세계들을 설계하는 전조등이다.2)오늘날의 사이언스픽션 영화가 기대는 CGI 기술은, 미디어비평가 플루서의 말처럼, 새롭게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무한대로 열어 놓았다. 자유는 실험성을 보장한다. 과연 사이언스픽션 영화가 어떻게 자유를 누릴지 지켜보아야 할 때이다.
1) 캐서린 헤일스,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 허진 옮김, 플레닛, 2013, 24쪽
2) 빌렘 플루서, 『피상성 예찬』, 김성재 옮김, 커뮤니케이션 북스, 2006, 301~30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