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향수와 메마른 입술 사이, 정지용의 고향 옥천
그녀는 우아했고, 픽션의 세계에 어울렸지 - 소설가 서영은 선생과의 만남
[특집을 기획하며]포스트휴먼 시대의 징후와 전망 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그녀’와 인간의 미래 - 포스트휴먼의 윤리와 철학 휴먼 가늠자로서의 포스트휴먼 - ‘프랑켄슈타인’에서 ‘로봇’까지, 과학소설의 진화 테크노포비아, 인간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는가 -영화로 시각화된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먼 시대의 AI, 과학 기술의 발전 - 인공지능은 인간을 추월할 수 있을까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 나의 아버지 ①항일문학을 완성한 ‘최후의 분대장’ - 나의 아버지 김학철 ② 맑고 깊고 높은 - 나의 아버지 박두진 ③임방울과 부케 - 나의 아버지 설창수 ④ “하루 두 끼를 굶더라도 한 줄 소설을 쓰자” - 나의 아버지 최태응
첫 번째｜추락한 이카로스와의 만남 두 번째｜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 줘* 세 번째｜구슬약 네 번째｜글을 쓰다
야구의 도입과 최초의 한글 야구규칙·용어집 『야구규칙』
대구,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 -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북성로와 동성로
이기적 글쓰기
글 김개미 ㅣ 동시작가, 1971년생
시집 『앵무새 재우기』, 동시집 『어이없는 놈』 『커다란 빵 생각』, 그림책 『사자책』 『나의 숲』, 시그림집 『나와 친구들과 우리들의 비밀 이야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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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기발한 생각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 생각을 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놀랍게도 그런걸 동시로 써놓으면 남들이 그래요. 자기도 그런 생각했다고요. 「커다란 빵 생각」도 그랬어요. 다들 하는 상상인데, 나는 다만 그걸 붙잡았을뿐이에요.
동시집 『커다란 빵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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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동시를 쓸 때 참 야무진 꿈을 꿨었어요. 누구나 다 아는 쉬운 언어로 사람들을 웃기고 울려야지. 아이도 어른도 웃기고 울려야지. 이루지 못할 꿈을 꾸면서도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 믿었어요. 최면을 걸고 또 걸었어요. 머릿속에는 꿈이 녹화된 텔레비전이 밤새도록 켜진 날도 있었어요. 그런 밤을 얼마나 많이 탕진했을까요?
망상을 버리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어요. 어느 날 나에게 물어보았어요.
왜 내가 남을 울리고 웃겨야 돼? 나는 금방 답을 얻었어요. 내 삶에서 제일 중요한 건 나니까 나를 울리고 웃겨야지. 내가 재미있어야지. 내가 좋아야지. 나 한 사람을 위해야지. 나는 아주 이기적인 동시를 쓰기로 했어요. 내가 읽고 싶은 동시, 내가 재미있어하는 동시를 쓰자고요. 나는 착하지 않아도 됐고, 의미 있지 않아도 됐고, 예쁘지 않아도 됐어요.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이상한 말도 바보 같은 말도 할 수 있게 됐어요.
「살구꽃이 필 때」를 쓰고 3일 내내 울었던 것 같아요.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눈물이 좀 나네요. 그건 너무 아파서 감춰 두었던 나의 이야기이고, 엄마의 이야기지요. 아, 나는 정말 나를 울릴 수 있게 됐어요. 그게 기뻐서 울다가 나중엔 또 그게 기뻐서 웃었지요. 동시를 쓰고 나서 울었다고 페이스북에 썼어요. 두 가지 반응이 오더라고요. 미쳤다는 말과 자기도 그런 적 있다는 말. 나는 이기적이니까 미쳤다는 말은 잊어버렸어요.
자기도 그런 적 있다는 말만 접수했어요. 동시를 쓴 이후 가장 짜릿한 순간이었어요.
「다시 이사 가」를 썼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딸아이 시점에서 쓴 동시인데, 그걸 쓰고 눈이 퉁퉁 부었지요. 그 동시를 한 번에 끝까지 읽을 수가 없어 여러 날이 지나고서야 학교 가는 아이를 현관에 세워놓고 읽어주었어요. 딸아이가 ‘개슬퍼’ 한마디 하고 나가더라고요. 그 동시는 그 후 초등학교 선생님 몇몇 분을 울리고, 어느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 전체를 울음바다로 만들었어요. 더 나를 믿기로 했어요. 나는 국문과도 문창과도 안 나왔어요.
그런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그건 바로 내 이야기였어요. 처음엔 내가 경험한 것에서 시작했어요. 이윽고 내가 느끼는 것, 내가 꿈꾸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등으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넓혀 나갔어요. 나에 대해서라면 내가 최고지요. 나에 대한 전공자는 나 한 사람뿐이니까요. 거기선 틀릴 것도 없고 잘못될 것도 없지요.
더욱더 나의 상상을 지지해주기로 했어요. 사소하고 이상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내가 나인 것이니까요. 내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누가 인정해주겠어요? 「삼촌 이야기」를 썼어요. 라디오 속에서 난쟁이들이 살다 떠나는 이야기인데, 어렸을 때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언제부터 그걸 잊어버리고 살았을까요? 내가 나의 엉뚱한 생각들을 존중하니까 하나 둘 잃어버렸던 세계가 다시 돌아와 숨을 쉬었어요.
누구나 기발한 생각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 생각을 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놀랍게도 그런 걸 동시로 써놓으면 남들이 그래요. 자기도 그런 생각 했다고요. 「커다란 빵 생각」도 그랬어요. 다들 하는 상상인데, 나는 다만 그걸 붙잡았을 뿐이에요.
동시집을 내려고 탄력 받아 한창 쓸 때 참 행복했어요. 너무나 행복해서 어쩌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대단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문장 하나 단어 하나 쓸 수 없을 것 같아요. 글을 쓰고 책을 내는 누구나가 겪는 가파른 감정이겠지요. 나에게 방황의 시간을 조금 더 주려고요. 또 다른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어요. 그것이 어떤 얼굴일지 미리 걱정하지 않을래요. 나는 아직 조금 더 절망할 필요가 있어요.
이번 동시집 『커다란 빵 생각』을 할아버지께 부칩니다. 책 한 권으로 된 무전이에요. 내가 여덟 살 때 돌아가셨지만 지금까지 내 곁에 계셔서 고마워요, 할아버지.
※ 동시집 『커다란 빵 생각』은 재단의 대산창작기금을 받아 2016년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