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향수와 메마른 입술 사이, 정지용의 고향 옥천
그녀는 우아했고, 픽션의 세계에 어울렸지 - 소설가 서영은 선생과의 만남
[특집을 기획하며]포스트휴먼 시대의 징후와 전망 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그녀’와 인간의 미래 - 포스트휴먼의 윤리와 철학 휴먼 가늠자로서의 포스트휴먼 - ‘프랑켄슈타인’에서 ‘로봇’까지, 과학소설의 진화 테크노포비아, 인간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는가 -영화로 시각화된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먼 시대의 AI, 과학 기술의 발전 - 인공지능은 인간을 추월할 수 있을까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 나의 아버지 ①항일문학을 완성한 ‘최후의 분대장’ - 나의 아버지 김학철 ② 맑고 깊고 높은 - 나의 아버지 박두진 ③임방울과 부케 - 나의 아버지 설창수 ④ “하루 두 끼를 굶더라도 한 줄 소설을 쓰자” - 나의 아버지 최태응
첫 번째｜추락한 이카로스와의 만남 두 번째｜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 줘* 세 번째｜구슬약 네 번째｜글을 쓰다
야구의 도입과 최초의 한글 야구규칙·용어집 『야구규칙』
대구,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 -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북성로와 동성로
모모와 김삼순의 시절 - 2005년의 화제작 『모모』
글 유은실 ㅣ 동화작가. 1974년생
동화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우리 집에 온 마고 할미』 『만국기 소년』
『멀쩡한 이유정』『마지막 이벤트』 『내 머리에 햇살 냄새』 『일수의 탄생』 『변두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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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은 나에게 참 좋은 해였다. 결코 짧지 않았던 작가 지망생 시절을 끝내고 첫 책이 나왔으니까. ‘등단’이라는 개인적인 상황 말고도, 나를 둘러싼 사회적 상황도 지금과 비할 수 없이 좋았다. 4000만원으로 광명시에 15평 전세 아파트를 얻어, 글쓰기 과외로 대출금을 갚아나가며 살 수 있었으니까.
좋았던 건 그뿐이 아니다. 드라마 속 뚱뚱한 김삼순은 ‘29살 노처녀’라 불리며, 엄마에게서 결혼 압박을 받았다. ‘노처녀’라는 말보다 ‘비혼’이라는 말을 훨씬 많이 접하게 된 2016년이,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더 나은 세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 아닌 것 같다. 그 때가 나았던 거다. 29살이면 정규직으로 취업을 하거나, 15평 신혼집을 4000만원에 전세로 얻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압박이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 최고 시청률을 올리면서, 드라마 속 김삼순(김선아 役)이 읽은 미하엘엔데의 『모모』는 교보문고에서 19주 동안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올랐다. 드라마 방영전에도 14만부 정도 팔린 스테디셀러였지만, 방영 이후 누적판매량이 140만부가 넘는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미하엘 엔데는 20세기 최고의 아동청소년작가 중 하나다. 1929년 독일 남부에서 화가 부부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엔데의 예술가적 재능은 그림뿐만 아니라 철학, 종교학, 연금술,신화에도 두루 정통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1960년에 첫 작품 『짐 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를 출간하고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했다. 1970년엔 『모모』를 출간해 같은 상을 다시 한 번 수상했다. 1979년엔『끝없는 이야기』를 출간해, 세계 문학계와 청소년들사이에 엔데라는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모모와 김삼순의 시절은 ‘싸이월드’의 시절이기도했다. 사람들이 점점 시간에 쫓기며 살게 되고, 누군가 자신의 말을 경청해주었으면 하는 욕망도 그만큼커졌던 것 같다. 진심으로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모모’의 이야기는, 이런 사회적 상황까지 맞물려 더욱 많은 독자를 갖게 된 듯하다.
『모모』의 주인공 ‘모모’는 대도시 변두리 폐허가 된원형극장에 사는 여자아이다. 모모에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재주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재주”였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모모』를 다시읽으며, “그 점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
그것은 아이들의 몫”이라고 말하는,“모모는 있는 힘을 다해 용감하게,
회색신사가 몸을 숨기고 있는 깜깜한 어둠과 텅 빈 허공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말하는 엔데에게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되었다. 나는 동화 작가가 ‘어린이 편드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부조리한 세상이지만 열심히 살아내라고 응원하는 자리에 선엔데가 나는 참 좋다.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줄 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더욱이 모모만큼 남의 말을 잘 들어 줄 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본문, 23쪽 중에서)
모모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며 지내던 도시 사람들은, ‘회색 신사’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는다. 회색 신사는 사람들에게서 행복과 풍요로움을 주는 ‘시간’을 빼앗아가는 존재다.
아무도 자신의 삶이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점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 그것은 아이들의 몫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아이들을 위해서도 시간을 낼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본문, 98쪽 중에서)
이 글을 쓰기 위해 『모모』를 다시 읽으며, “그 점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 그것은 아이들의 몫”이라고 말하는, “모모는 있는 힘을 다해 용감하게, 회색신사가 몸을 숨기고 있는 깜깜한 어둠과 텅 빈 허공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말하는 엔데에게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되었다. 나는 동화 작가가 ‘어린이 편드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부조리한 세상이지만 열심히 살아내라고 응원하는 자리에 선 엔데가 나는 참 좋다.
‘이렇게 깊이 있고, 철학적인 책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는 어른이 적잖을 것 같다. 아이들은 많은 어른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깊이 있고 철학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고 본다. 문예창작학과에서 만나는 90년대생들에게 ‘어린 시절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책’을 꼽으라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와 『모모』가 가장 많이 나온다. 『모모』 같은 작품을 쓰고 싶어,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학생도 보았다.
미하엘 엔데를 『모모』로만 만난 분이 있다면, 그림책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과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권하고 싶다. 그림책도, 저학년 눈높이로 쓴 판타지도 기막히게 좋다.
엔데는 1995년, 예순다섯에 위암으로 눈을 감았다. 좀 더 많은 작품을 쓰지 못하고 일찍 떠난 게 마음 아프다. 동화책이 19주 동안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4000만원 전세 아파트가 있고, 스물아홉 청년에게 결혼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던 시절도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 마음 아프다. 참……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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