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향수와 메마른 입술 사이, 정지용의 고향 옥천
그녀는 우아했고, 픽션의 세계에 어울렸지 - 소설가 서영은 선생과의 만남
[특집을 기획하며]포스트휴먼 시대의 징후와 전망 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그녀’와 인간의 미래 - 포스트휴먼의 윤리와 철학 휴먼 가늠자로서의 포스트휴먼 - ‘프랑켄슈타인’에서 ‘로봇’까지, 과학소설의 진화 테크노포비아, 인간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는가 -영화로 시각화된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먼 시대의 AI, 과학 기술의 발전 - 인공지능은 인간을 추월할 수 있을까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 나의 아버지 ①항일문학을 완성한 ‘최후의 분대장’ - 나의 아버지 김학철 ② 맑고 깊고 높은 - 나의 아버지 박두진 ③임방울과 부케 - 나의 아버지 설창수 ④ “하루 두 끼를 굶더라도 한 줄 소설을 쓰자” - 나의 아버지 최태응
첫 번째｜추락한 이카로스와의 만남 두 번째｜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 줘* 세 번째｜구슬약 네 번째｜글을 쓰다
야구의 도입과 최초의 한글 야구규칙·용어집 『야구규칙』
대구,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 -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북성로와 동성로
국립문학관과 공간성
글 진은영 ㅣ 시인,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교수. 《대산문화》 편집자문위원. 1970년생
시집 『일곱개의 단어로 된 사전』 『훔쳐가는 노래』 『우리는 매일매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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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 종일 바위 절벽 가장자리에 앉아 삶을 꿈꾸었다”(루이 아라공, 「회상을 위한 시」). 아라공과 그의 영원한 연인 엘자가 함께 묻혀 있는 뜰 한 가운데에서 이 시구를 읽는다면 어떨까? 두 사람이 살던 프랑스 생-타르누의 집은 국가에 기증되어 아라공문학관이 되었다. 이 문학관은 국가가 관리하는데다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최근 논의되고 있는 국립한국문학관의 설립에 참조할 만한 주요 사례로 거론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아라공문학관의 기능은 다섯 가지다. 그곳을 방문하는 이들은 문학관과 연계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지역의 명소를 둘러보거나 문화행사를 관람한다. 문학관이 지역관광의 거점인 셈이다. 또한 문학관은 청소년을 위한 문학 프로그램들을 제공하면서 보조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아울러 여러 장르의 문화예술 활동을 기획해 다양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복합문화공간의 기능도 한다. 연구자들에게는 아라공의 장서와 육필원고, 편지 등을 연구할 수 있도록 열람실과 숙박시설을 제공하는 연구지원 공간의 성격도 갖는다. 마지막으로 문학관 건물은 아라공이 사용했던 소소한 사물들로 가득한 박물관이다. 국립한국문학관 설립이 구체화되면서 많은 지자체들이 문학관 유치를 위해 자기 지역이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데 얼마나 적합한지를 경쟁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아라공 문학관은 국가가 관리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작가의 집이다. ‘엘자트리올레와 루이 아라공의 집’이라는 정식 명칭이 이 점을 잘 말해준다. 그 건물이나 소장품들이 의미를 갖는 것은 그 자체로 예술적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삶의 흔적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방문자는 시인이 자기가 지금 서 있는 이 계단을 오르내리고 계단 옆에 난 작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며 시상을 떠올렸을 것이라는 상상만으로도 특별한 기분에 젖는다. 어떤 공간이 주는 생생한 실감 속에서 문학적삶을 느끼는 기쁨은 강력하다.
국립문학관이 개별 작가의 집이 지닌 이런 마술적 공간성을 갖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참조하곤 하는 프랑스에는 국가가 관리하는 문학관들은 있어도 정작 국립프랑스문학관은 없다. 프랑스에 없으니 세울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국립한국문학관이 건립되어 훼손과 소멸 위기에 놓인 유산들을 발굴·보존하고 개인 수집가와 유족이 보관해오던 육필원고나 일기, 편지 등을 보다 체계적이고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국립한국문학관의 건립이 한국문학의 새로운 도약을 가능하게 해줄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소중하기 때문에 그 건립의 전망과 공간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더욱 필요하다. 지역의 발전을 위한 지자체들 간의 경쟁 자체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 경쟁이 다양한 문학적 서사성을 생산하면서 서로를 고양시키는 문학적 아고니즘(Agonism)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프랑스에서는 문학관 설립에서 ‘해당 인물이 실제 살았던 장소’라는 조건이 엄격히 지켜지지 않는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프랑스의 피카르디에서 전사한 영국 시인 오웬의 문학관이 그러하다. 오웬은 이 건물의 지하에서 하루를 묵으며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다음 날 그는 마을 근처 운하를 건너다 적군의 공격을 받고 전사했다(손정훈, 「프랑스의 문학유산 정책(1)」). 오웬의 시적 정조를 이해하는 데에는 단 하룻밤 묵은 타국의 이 공간이 영국의 어느 장소들에 뒤지지 않는다. 한 장소를 위대한 문학적 공간으로 되살려내기 위해서는 단순히 삶의 세세한 물질적 흔적이 아니라 서사적 핵을 발견하고 그것을 새롭고 강렬한 이야기로 풀어가는 능력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국립한국문학관은 지역문학관과는 다른 차원의 서사적 핵과 문학적 스토리를지니고 있어야 한다. 지역문학관의 다양한 서사성의 생산을 침해하지 않고 그것을 촉진하면서도 어떤 고유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문학적 공간성에 대한 전망이 활발하게 논의되어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