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낙화落花

영국의 시 축제들

시인은 청진기, 아픔을 듣고 붉은 꽃을 처방한다

여성의 눈으로 희망 찾기

특집을 기획하며 민족의 의지와 행운이 함께한「독립선언서」 작성 과정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국제사회에 알린 영문 「3·1독립선언서」 「독립선언서」에서 배제된 여성들의 「대한독립여자선언서」 「독립선언서」에 담긴 이상과 현실

이야기꾼의 운명, 이야기의 힘

SNS는 눈, 유튜브 문학은?

“깨끗한 것이 선악보다 낫다”

자동차

고리키세계문학연구소에서

일출(日出), 빛과 색 이야기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모든 순간들이 한국문학이고 ≪현대문학≫이다

하필이면

김점순 어머니

가면 오리, 오면 십리

티브이를 보다가,뼈 펴는 소리 포스터

행자가 사라졌다! 눈과 사람과 눈사람

불꽃놀이

「동시대 문학의 시간착오와 불안」에 부쳐

운이 좋은 이유 작가, 같이 아픈 사람들이 주는 큰 위안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세밀하게, 간결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LOVE NEVER FAILS

“차(茶)란 먼저 형태를 만들고 마음을 담는거야”

역사가 인류에 대해 말해주는 것

다르게 또 새롭게, 문학 안에서 전진하는 페미니즘

통째로 얼지 않으려고

“죽음의 그림자 가운데 써나간 고통의 기록”

터키인들도 ‘타는 목마름’을 아는가!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대산창작기금,대산청소년문학상 등

2019 대산창작기금 및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공모 등

가상인터뷰

이야기꾼의 운명, 이야기의 힘

- 셰에라자드, 그리고 그의 여동생 디나르자드와의 대화

글 정여울 ㅣ 작가, 1976년생
저서 『마흔에 관하여』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마음의 서재』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등

셰에라자드 ㅣ 『천일야화』의 주인공이자 화자. 사산 왕조의 샤리아 왕이 아내의 배신으로 인해 세상 모든 여성을 혐오하게 되고, 매일 밤 새 신부를 맞이하여 이튿날 살해하는 참극이 벌어지자, 대신의 딸 셰에라자드가 나서 천 하루 동안 왕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어, 왕이 자신은 물론 다른 여성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

디나르자드 ㅣ 셰에라자드의 여동생. 매일 밤 셰에라자드가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를 왕께서 들어주시기를’ 부탁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정  정여울  셰에라자드  셰에라자드  디나르자드  디나르자드


 정  향기로운 차와 달콤한 쿠키를 곁들인, 오후 세 시의 티타임에 초대하고 싶은 두 사람이 있습니다. 『천일야화』의 주인공 셰에라자드, 그리고 그녀의 여동생 디나르자드. 당신들을 나의 작업실로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거든요. 온갖 상념과 걱정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 나는 『천일야화』를 펼쳐 읽곤 해요. 천일야화, 말 그대로 1,000일하고도 하룻밤의 이야기. 셰에라자드, 당신은 어떻게 당신을 죽일지도 모르는 그 무시무시한 연쇄살인범이자 모든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국왕 앞에서, 그토록 두려움 없이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나요? 저는 당신의 용기와 대담함에 매번 등골이 오싹해지는 짜릿한 감동을 느끼곤 합니다. 왕비의 배신에 충격을 받은 왕이 왕비를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결혼식 첫날밤마다 처녀와 관계를 하고 다음 날 아침 살해해버리는 상황. 당신의 아버지는 분노에 사로잡힌 국왕에게 처녀를 조달하는 신하의 역할을 하고 있었지요. 이미 1,000명에 가까운 처녀들이 처참하게 살해당한 상황에서, ‘이제 더 이상 어디서 처녀를 데리고 와야 될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는 아버지의 푸념을 들으며, 당신은 마침내 스스로 ‘첫 번째로 희생당하지 않는 처녀’가 될 것을 자원하지요. 그 용기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지는데, 무려 천 하루 동안 뼛속 깊이 스며드는 죽음의 공포를 껴안고, 매일 밤 새로운 이야기를, 그것도 왕이 당신을 절대로 죽일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생각해냈다니. 당신을 통해 나는 ‘두려움 앞에 맞서는 이야기꾼의 위대한 용기’를 생각하게 됩니다. 저에게도 그런 용기가 생기기를 간절하게 기도하면서요.

 셰에라자드  아, 당신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군요. 당신의 이야기가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하지만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커다란 용기를 이미 가지고 있을 겁니다. 1,000년이 넘는 시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나에게 말을 걸고 있잖아요. 나는 이미 동서양의 수많은 작가들에게 소환되고, 인용되고, 패러디되어 이제는 조금 피곤해질 지경인데도 말이지요. 당신이 아주 오랫동안 망설이다 나를 불러낸 것을 알고 있어요. 당신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초대 손님 후보 중에는 좀 더 당신이 공감하기 좋은 현대의 작가들이 많았겠지요. 나보다 더 전투적이고, 나보다 더 화려한 스토리텔링을 가진 다른 작가들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이토록 절실하게 이야기꾼이 되기를 꿈꾸는 당신이 결국 나를 선택했으니, 당신이 용기를 낼 수 있기를 바라며 내 용기의 비결을 들려드릴게요. 내 용기의 비결 중의 하나는 바로 제 동생, 디나르자드였어요.

 디나르자드  언니의 용기의 비결이 바로 나였다고? 이건 금시초문인 걸? 내 기억 속의 언니는 어린 시절부터 용감하고 총명하고 아름다운, 한 마디로 완벽한 사람이었어. 오히려 나는 언니 때문에 조금은 주눅 든 어린 시절을 보냈는걸, 그건 언니도 알잖아.

 셰에라자드  디나르자드야, 너는 결코 주눅들 필요가 없어. 나도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항상 두려웠거든. 게다가 매일 줄초상을 치르는 내 나라에서, 매일 아침 집집마다 ‘우리 딸이 왕의 손에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 가족들의 끔찍한 울음소리가 들리는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두려웠지만, 너와 나 모두가 언젠가는 국왕의 하룻밤 제물이 되어 사라졌을 때, 가엾은 아버지 혼자 남으실 것이 더욱 두려웠지. 왕에게 충성하기 위해 딸을 제물로 바쳤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참혹한 외로움 속에 홀로 남겨질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니, 더는 물러설 수가 없었지. 이건 내가 한 사람의 딸로서 느끼는 두려움이었고, 더 근원적인 두려움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처녀라는 이유로, 능욕당하고, 도륙당하는 우리 여성들의 운명이었어. 그 불합리한 운명과 맞서 싸우지 않는 한, 우리에겐 어떤 미래도 없었지. 막다른 곳에서 나도 모르게 용기가 솟아 나왔어. 하지만 아까 말했듯 내 용기의 또 다른 진원지는 디나르자드, 너였단다. 네가 왕 앞에서 ‘언니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라’고 부탁하지 않았더라면, 왕 옆에서 네가 온 힘을 다해 내가 죽지 않기를 기도하며 내 이야기를 숨죽여 듣고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1,001일 동안의 그 무시무시한 공포 속에서 혼자 견디기 어려웠을 거야.

술탄은 셰에라자드와 잠자리에 들었다. 그들의 침상은 동방의 군주들의 방식대로 높은 단 위에 놓여 있었으며, 디나르자드의 침상은 그 단 밑에 마련되어 있었다. 동트기 한 시간 전, 잠에서 깨어난 디나르자드는 잊지 않고 언니가 시킨 대로 큰 소리로 말했다. 「언니! 만일 자고 있지 않으면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조금 있으면 동이 틀 터인데, 그때까지 언니가 알고 있는 그 많은 재미난 이야기 중 하나를 들려주세요! 아아! 이런 즐거운 시간도 이번이 마지막일 테니까요!」 셰에라자드는 동생에게 대답하는 대신 술탄에게 말했다. 「폐하! 제 동생의 청을 들어주는 것을 허락해 주시겠나이까?」 「기꺼이 들어주겠소.」 술탄의 대답이었다. 그러자 셰에라자드는 샤리아 쪽으로 몸을 돌려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 앙투안 갈랑 판 『천일야화』(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2010), 제1권 45~46쪽.

▲ 열린책들에서 펴낸 앙투안 갈랑 판 『천일야화』    

 정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야기의 청자, 책의 독자가 이야기의 주체, 이야기꾼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청자 혹은 독자가 어떻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읽어주고, 그들의 삶 속에서 그 이야기를 녹여내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운명은 전혀 달라질 수가 있으니까요. 당신의 상황은 매우 이중적이었군요. 한쪽에는 우호적인 청자, 그러니까 당신의 이야기를 온 힘을 다해 정성껏 들어주는 여동생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아주 적대적인 청자, 당신을 언제든 죽일 준비가 되어 있는 절대 권력자이자 방금 당신의 처녀성을 앗아간 국왕이 당신을 노려보며 이야기를 듣는 상황이지요. 당신의 이야기를 세상에서 가장 잘 들어주는 한 사람의 청자가 있었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말도 이해가 됩니다. 저도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쓸 때 두려움이 엄습해오는 순간이 있어요. 그럴 때는 ‘내 말을 소중하게 잘 들어줄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상상해요. 그러면 두려움이 조금씩 사그라지고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좋은 글을 쓰기를, 한 사람을 위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지요.

 셰에라자드  바로 그거예요. 나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 매일 밤 두려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전혀 두렵지 않기도 했어요. 내 이야기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이야기인 듯, 이번 생에 마지막인 듯, 필사적으로, 간절하게 들어주는 한 사람, 디나르자드가 있었으니까요.

 디나르자드  언니는 두려웠다고 하지만, 제 눈에 비친 언니는 두려움을 이미 초월한 사람 같았어요. 매일매일 다른 눈빛으로, 다른 표정으로, 마치 처음부터 인생을 다시 시작하듯 왕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언니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니의 존재 전체에서 우러나오는 생생한 빛줄기를 느꼈을 거예요. 그건 죽음의 공포와 맞서 싸우는 전사의 몸짓만은 아니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신명 나는 멜로디와 리듬에 맞춰, 이번 생의 마지막 춤을 추는 댄서 같다고나 할까요. 셰에라자드가 빚어내는 이야기의 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생기발랄하면서도, 못 견디게 슬픈 것이었지요. 때로는 왕의 잔인한 분노에 죽어간 여인들을 향한 애도처럼 흐느낌이 묻어 있고, 때로는 이제부터 언니의 아이들과 펼쳐갈 새로운 세상을 향한 희망이 가득 찬 생기발랄한 춤. 나는 언니의 이야기 속에서 내일 또 살아갈 힘을, 아버지의 눈물을 닦아 드릴 용기를 얻곤 했어요.

 정  세상 모든 독자들이 디나르자드 같다면, 작가들은 그야말로 ‘이야기할 맛’이 매일매일 화수
▲ 정여울     

분처럼 솟아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천일야화』의 샤리아 국왕만큼이나 무서운 눈초리로 ‘어디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과연 재미있을지, 들어볼 가치가 있을지, 두고 보자’라는 눈빛으로 작가를 쏘아보는 무시무시한 청자들이 많지요. 하지만 내가 하려는 이야기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저만의 감정은 아닐 거예요. 적대적이거나 무관심한 청중이나 독자 앞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순간의 공포는, 오랜 작가 생활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두려움을 극복하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나만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들려주는 행위 자체에 스민 아름다움을 알 것 같아요. 나는 이 일을 사랑하고, 앞으로는 더욱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의 단단한 편견을 부순다는 것,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의 살의나 적대감까지 녹아내리게 한다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일이지요. 끔찍한 살인자로 전락해 버린 왕의 여성혐오증을 치유하고, 마침내 여성의 목숨과 여성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이야기의 힘. 기적이 필요한 순간, 혁명이 필요한 순간, 이야기의 힘이 바로 그 기적이자 혁명이 되어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셰에라자드  그래, 맞아요. 이야기 자체에는 그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가끔 어둠 속에서 샤리아 왕의 눈이 반짝이는 순간이 있었어요. 왕은 심지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박장대소를 하기도 하고, 감격에 겨운 나머지 나를 격정적으로 꼭 끌어안기도 했어요. 이야기의 힘이 나와 국왕 사이의 무시무시한 장벽을 녹여버리는 순간, 어떤 때는 그가 더 이상 내가 무찔러야 할 적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그런 순간이 바로 나의 이야기가 그의 마음의 빗장, 적대감과 분노와 의심과 원한의 총체적 응어리를 녹여버리는 순간이었죠. 그를 만난 첫날밤, 나는 그의 눈에서 번뜩이는 살기를 보았어요. 하지만 그와 내가 함께 하는 ‘이야기의 밤’이 지속되어 갈수록, 어느덧 그 분노와 광기가 가득한 살기 어린 눈빛은 사라지고 이야기에 매혹될 준비가 되어 있는 눈빛, 이야기의 힘에 어느새 흠뻑 사로잡힌, 다정한 청자의 눈빛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디나르자드  나도 술탄의 눈빛을 보았어요. 어느 순간 그가 셰에라자드 언니를 바라보는 눈길에 존중, 혹은 존경의 눈빛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사랑의 눈빛과는 좀 다른 것이었어요. 물론 사랑의 눈빛도 느껴졌지요. 언니를 사랑하지 않기란 힘들지요. 언니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사랑스러운 사람, 이야기의 힘이 언니를 무장시키지 않아도 본래 생기발랄한 사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왕의 눈빛에는 사랑스러운 여인을 바라보는 시선 그 이상의 힘이 서려 있었어요. 왕은 ‘밤새도록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셰에라자드’를 ‘밤을 함께하는 여인으로서의 셰에라자드’보다 더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정   여성으로서의 삶과 이야기꾼의 삶이 공존하는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는 현대 여성들에게도 많은 힌트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은 1,001일 동안 이야기만을 한 것이 아니라, 국왕이 모르게 아이를 셋이나 낳고, 반듯하게 키워 1,001일째 되는 날 아이들을 국왕에게 보여주었잖아요.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그 공포 속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고, 그러면서도 목숨을 건 이야기꾼의 삶을 병행할 수 있었나요. 심지어 출산을 한 날에도 왕의 침소에서 ‘이야기의 밤’을 지속해야 했잖아요. 그런 걸 보면 샤리아 왕은 정말 무심하고도 잔인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셰에라자드  왕의 무심함이 현대 여성의 눈에는 충격적이겠지만, 당시 남성들은 대부분 그 정도의 무심함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어요.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를 자신의 부속물로 여기던 남성들이 많았죠. 그렇지만 내가 일부러 이야기하지 않은 것도 있었어요. 왕에게 ‘내가 오늘 당신의 아이를 낳았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던 거죠. 내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겪은 그 모든 고통을 합쳐도 내가 그날 겪은 고통보다 심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출산이라는 사건은 단지 육체의 고통만이 아니라, 나의 세계가 언제 파국을 맞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과연 이 여린 생명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새로운 차원의 공포로 이행하는 일이었으니까요. 육체적 고통보다도 더 무시무시한 공포, 이 아이를 과연 제대로 된 인간으로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지요. 고통스러웠지만, 아직 왕에게 말할 준비가 되지 않았지요.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왕에게 목숨을 구걸하긴 싫었거든요. 내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한 여자로서의 삶도 위태로운 순간에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했으니. 하루하루 살아남는 데 급급한 시간이었기에 어머니로서의 삶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그것 또한 내 동생 디나르자드가 없었더라면, 이 위태로운 모성을 함께 나누고 함께 내 아픔에 공감하며 울어줄 사람이 없었더라면 너무도 외로웠을 거예요. 요새 여성들이 많이 겪는 출산우울증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아요. 내 모든 우울과 고통을 날려준 것도 역시 이야기의 힘, 그리고 내 소중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의 힘이었죠.

 정   『천일야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왕과 보낸 밤과 그 밤에 들려주었던 이야기뿐이었지만, 디나르자드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두 자매가 ‘낮’에 보낸 일상은 어쩌면 이야기를 준비하는 시간, 이야기를 증폭하는 시간, 이야기의 울림과 떨림을 실험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아라비안 나이츠(Arabian Nights)’도 아름답지만, ‘아라비안 데이즈(Arabian Days)’는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싶어요. 당신이 1,000일 하고도 하루 동안 겪어온 아라비아의 낮과 밤 중에서 우리는 밤의 이야기만 알고 있지만, 숨겨진 아라비아의 대낮에도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가득 숨어 있을 것 같습니다.

 셰에라자드  하루 중 가장 긴장되는 시간이 왕과 마주치는 순간이었다면,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동생과 이야기를 준비하는 시간이었어요. 우선 왕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낮에 동생에게 들려주고 동생의 반응을 보는 거예요. 디나르자드가 이야기의 톤을 조정해주기도 했어요. 언니, 이건 좀 더 긴장감 넘치게 말해봐. 언니, 이건 좀 더 천천히 차분한 어조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는 그 모든 아름다운 이야기의 공모자였어요. 마치 정성스럽게 실을 자아내고 염색을 하며 옷감을 짜는 여인들처럼 우리는 이야기의 씨실과 날실을 함께 어루만지며 이야기를 만들어나갔지요. 그러는 동안 우리가 매일 만들어나가는 삶 또한 그 자체가 한 편의 이야기로 빚어지고 있었어요. 낮에 동생과 함께 이야기를 수집하고 만들어가는 시간이 없었더라면 우리 둘만의 ‘아라비안 나이트’는 불가능했을 거예요.

 정   아기가 태어난 후에는 당신의 삶도 많이 바뀌지 않았나요? 이제 책임져야 할 생명이 더 늘어났다는 중압감도 느껴졌을 테고, 또 아기와 함께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들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기들의 옹알이를 보면서, 아기들의 재롱을 보면서, 당신에게도 ‘아직 이야기가 태어나지 않은 시간’의 인간을 관찰할 시간이 있었겠지요.

 셰에라자드  그래요, 아기는 내가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울고 싶어질 때마다, 어처구니없는 미소를 안겨주었죠. 아기가 태어난 후, 반드시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자꾸만 늘어갔어요. 처음에는 나와 동생이 살아남아야 했죠. 매일 아침 나의 수의를 들고 ‘내 딸이 오늘은 죽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찾아오시는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했어요. 하지만 첫 번째 아이가 태어나자,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신비로운 자신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죠. 이 아이는 왕의 아이나 한 남자의 아이가 아니라 ‘나의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소유물이 아니라,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닌 존재. 매일 밤 죽을지도 모르는 운명 속에서 매일매일 살아나는 나, 나의 존재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을, 그 아이는 가르쳐주었던 거예요. 그러다 어느 순간, 다행히도 살아남은 오늘 하루를 최고의 하루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어쩌면 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날은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더욱 기적처럼 눈부시게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정   셰에라자드의 이야기에 국왕이 자신의 만행을 뉘우치는 모습, 마침내 부정을 저지른 자신의 아내까지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 저는 이야기가 지닌 고유의 폭발적 에너지, 창작자와 구연자의 의도를 뛰어넘는 이야기 자체의 힘을 느꼈답니다. 이야기는 이야기꾼의 존재를 뚫고 나아가, 나(이야기꾼)를 넘어, 나를 초월하여, 나 이상의 존재로 증폭되어 마침내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존재, 나의 적대자, 이 세상 모든 여성들을 증오하는 한 인간의 적대감을 마비시키고, 그를 감동시키고, 마침내 전혀 다른 존재로 만들었지요. 이야기가 창작자와 구연자의 의도를 뛰어넘어 독자의 삶 자체를 바꾸는 힘이 될 때, 이야기꾼의 운명은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셰에라자드, 디나르자드, 우리들의 이야기가 밤새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네요. 어쩌면 1,000년이 넘는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우리가 만난 것도, 또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의 시작이 아닐까요.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