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낙화落花

영국의 시 축제들

시인은 청진기, 아픔을 듣고 붉은 꽃을 처방한다

여성의 눈으로 희망 찾기

특집을 기획하며 민족의 의지와 행운이 함께한「독립선언서」 작성 과정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국제사회에 알린 영문 「3·1독립선언서」 「독립선언서」에서 배제된 여성들의 「대한독립여자선언서」 「독립선언서」에 담긴 이상과 현실

이야기꾼의 운명, 이야기의 힘

SNS는 눈, 유튜브 문학은?

“깨끗한 것이 선악보다 낫다”

자동차

고리키세계문학연구소에서

일출(日出), 빛과 색 이야기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모든 순간들이 한국문학이고 ≪현대문학≫이다

하필이면

김점순 어머니

가면 오리, 오면 십리

티브이를 보다가,뼈 펴는 소리 포스터

행자가 사라졌다! 눈과 사람과 눈사람

불꽃놀이

「동시대 문학의 시간착오와 불안」에 부쳐

운이 좋은 이유 작가, 같이 아픈 사람들이 주는 큰 위안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세밀하게, 간결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LOVE NEVER FAILS

“차(茶)란 먼저 형태를 만들고 마음을 담는거야”

역사가 인류에 대해 말해주는 것

다르게 또 새롭게, 문학 안에서 전진하는 페미니즘

통째로 얼지 않으려고

“죽음의 그림자 가운데 써나간 고통의 기록”

터키인들도 ‘타는 목마름’을 아는가!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대산창작기금,대산청소년문학상 등

2019 대산창작기금 및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공모 등

창작 후기

통째로 얼지 않으려고

시집 『로라와 로라』

글 심지아 ㅣ 시인, 1978년생 시집 『로라와 로라』 등

 

네가 눈을 감자마자 잠의 모험이 시작된다

— 조르주 페렉 『잠자는 남자』 중

 

눈을 감았다 뜬다. 눈꺼풀이 열리기 전 눈이 닫혀 있는 아주 짧은 시간. 나는 오늘도 아주 짧은 잠을 잔다. 아주 짧은 망각을 잔다. 눈을 감았다 뜨며. 아주 짧은 망각의 연쇄를 잔다. 오늘도 잠의 모험이 시작된다. 나의 잠은 불규칙한 토막이다. 잠과 잠의 접합면을 붙일 아교가 오랫동안 내게는 없었다. 토막 난 잠으로부터 토막 난 순간들로부터 나는 책 한 권을 꺼내 나왔다.

Slice me Not

페이스트리를 구웠다. 그것의 무게는 282그램이다. 지난여름 밀대로 얇게 밀어놓은 반죽들을 겹쳐 쌓아 페이스트리를 구웠다. 가로 132밀리미터 × 세로 218밀리미터 너비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두께는 20밀리미터 즈음이다. 살구나 자두, 달걀을 쥘 때 손은 잠시 동안 둥지가 된다. 내가 구운 그것은 손안에 오목하게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것을 들 때 손은 편평하게 밀착한다. 어쩌면 편평한 손은 다른 형태의 알을 쥐는 다른 형식의 둥지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알의 운명은 두 가지이다. 부화하거나 부화하지 않거나. 부화하기와 부화하지 못함 사이에는 알이 맺게 되는 다수의 관계가 있다. 누군가는 직사각형 모양의 납작한 알을 함박눈만을 위한 보도블록 같은 것으로 인식할 수도, 누군가는 그것을 조금씩 금이 가는 불투명 유리창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금이 가는 유리창은 금이 가는 껍질처럼 다른 세계에 대한 예감의 실행이다. 누군가에게는 이부자리를 펼치고 파묻히고 싶은 침상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겹이 많아 바스락거리는 페이스트리의 형식을 나는 오랫동안 좋아했으므로 나는 이것을 지난여름에 구워 선반에 놓여 있는 페이스트리로 바라본다. 서가에 꽂힌 책들을 보며 나는 식욕을 느끼곤 했는데 위장에서라기보다는 손과 눈에서 시작되는 식욕이었다. 손으로 한 겹 한 겹 페이스트리들을 넘겨 읽으며 위장은 비어가고 책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밀착하여 무언가의 소화기관 속에서 섞여 좀 더 세밀한 기관들로 흡수되는 것이다. 정신의 생분해 작용 속에서 누군가는 빵을 썰어 먹고 누군가는 빵을 뜯어 먹고 누군가는 빵을 베어 먹는다. 언젠가 내가 갔던 빵을 파는 카페의 와이파이 비밀번호는 Slice me Not이었다. 그렇다면 뜯어먹어도 되겠습니까, 베어 물어도 되겠습니까. 하나의 빵은 더 많은 읽기의 형식을 요청한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하나의 온전한 형태에도, 허물어진 형태에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나는 매력을 느낀다. 나는 대체로 속수무책인데 아무 데서나 아무 때나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속수무책인 생명체가 언어로 구워낸 페이스트리가 나의 서가에 한 권 놓여 있다. 그것은 자랑은 아니다. 그럼 뭘까. 글쎄. 작은 세계를 밀대로 얇게 밀고 밀어 얇아지고 있는 반죽이 있다는 것, 작은 세계를 얇게 밀고 밀어 넓어지고 있는 반죽이 있다는 것, 맨몸을 감싸기 좋은 부드럽고 서늘한 옷감처럼, 혹은 얇은 살갗으로 호흡하는 섬세한 세계처럼. 겹과 겹 사이로 신선하고 바스락거리는 공기가 지나간다.

통째로 얼지 않으려고

어질러 놓는다. 아이들이 자신의 신체 주변으로 끌어당겨 놓은 장난감처럼. 부분만 남아있는 온갖 물체들처럼. 토막토막 발명하는 잠에서 꺼내온 책은, 지난여름 구운 언제나 부스러기를 흘리고 있는 페이스트리는 아이들이 어질러 놓은 온전하지 않은 장난감처럼 나와 세계 사이에 놓여 있다. 그것은 그다지 단정한 방식은 아니다. 나는 아이들이 상하기 쉬운 작은 신체 주변으로 어질러 놓은 물체들의 논리 없는 논리를 사랑한다. 그런 물체들은 구체적인 감각과 감정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잊기 쉬운 너무나 사소해서 모호해지는 물질들처럼 보인다. 내가 꺼내 놓은, 부스러기를 흘리는 것은 나와 세계 사이 어디 즈음에서 단정하지는 못하게 언제나 부스러기를 흘릴 것이다. 아이들이 어질러 놓은 것 중 하나처럼. 당신이 지나가는 순간 부스러기들의 소란과 고독과 배치는 변형될 것이다. 매 순간 내면의 배치가 바뀌는 것처럼.


 

※ 필자의 시집 『로라와 로라』는 재단의 대산창작기금을 받아 2018년 민음사에서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