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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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번역지원 영어권 후보 원고는 총 14편이 들어왔다. 예년보다 많은 양은 아니나 질적으로는 지원할만한 수준의 원고가 적지 않았기에 총 4편을 추천하기로 결정하였다. 심사에 있어서 원작의 질과 번역의 가독성 및 영어의 수준은 물론이요, 영어권 현지의 출판 가능성 및 활용도와 파급효과 등이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문학을 바라보는, 또는 문학이 존재하는 구체적인 사회적 양태가 한국과 영어권에서 같지 않은 까닭이다.

이런 점에서 당장 한국학 연구자들이나 한국학 강의실에서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생각되는 작품들에 후한 점수를 부여했다. 특히 『난설헌집』 영역은 기존의 『Visions of a Phoenix』가 이미 개척한 허난설헌에 대한 영어권 한국학 및 동양학계의 관심에 부합되는 시의적절한 작업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지하 시선집』도 그간 김지하의 개별 작품들의 부분적인 번역 단계에서 벗어나 좀더 총체적이고 체계적인 김지하 번역이란 점에서 이 작업의 학술적 가치를 인정했다.

물론 본 번역지원의 취지에는 오늘의 한국문학을 생생하게 외국에 전파하는 것도 큰 몫을 차지한다. 또한 상당수의 후보 원고들은 대산문학상 수상작을 포함한 당대의 작품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본 심사진은 원작자 및 원작의 비중과 영어권에서의 인지도와 출판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물론 영어의 수준 자체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으나, 그 작품이 결과적으로 영어권에서 하나의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인지되고 이용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 점에서 고은의 『소설 禪』을 선정한 것은 이미 시인으로서 고은이 누리는 해외에서의 명성에 힘입어 어느 정도 학계나 문단의 주목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의 반영이다. 선불교에 대한 구미인의 관심도 물론 이 번역 작업의 가치를 보증할 것으로 생각된다. 김인숙의 소설집 번역 원고는 두 종이 제출되었으나 이 중에서 영어의 가독성이 높은 후보를 선정하였다. 하지만 좀더 원작의 문체를 살려보려는 노력이 아쉽다는 점에서는 선정된 원고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이 모든 심사 과정에서 두 심사위원은 전혀 이견이 없었고 놀라울 정도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번에 지원 대상이 되지 못한 신청자나 이번에 신청하지 않은 다른 분들도 이와 같은 심사취지를 감안하여 적극적으로 본 번역지원에 관심을 보여주길 독려한다.

올 한국문학 번역지원 불어권에는 총 9편의 작품이 신청되었다. 번역자들 대부분이 이미 한국문학의 불어 번역에 있어서 여러 업적을 쌓아 가고 있는 분들로서 번역의 수준이 고르게 높았고 또한 프랑스 출판사와의 사전 작업을 비롯한 재단의 여러 요구 사항들을 빈틈없이 준비한 작품들도 많았기 때문에 3편 정도를 고르는 선정 과정이 특별히 더 어렵게 느껴졌다고 할 수 있다.

단순한 번역과 일방적 소개가 아니라, 한국문학과 해외독자의 실제적 만남을 목표로 하는 것이 사업의 방향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심사위원들은 프랑스 독자에게 일정한 호소력을 가질 만한 작품들을 선별하는데 특히 유의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이미 문학사 안에서 그 완성도가 인정된 작품을 취하는 동시에 현대 한국문학의 발랄함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도 함께 고려함으로써 적은 수의 작품 안에서나마 일정한 균형을 취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청준 씨의 『시간의 문』과 대산문학상 수상작인 김연수 씨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그리고 김탁환 씨의 『방각본 살인사건』이 각각 작품의 문학성이나 프랑스 독자에의 호소력이라는 점에서는 물론, 각고의 흔적이 느껴지는 번역의 완성도에 있어서 무리 없는 지원대상작으로 추천되었다. 아울러 현대 한국문학의 다양한 모습이 이들 작품을 통해 어느정도나마 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네 편의 시 번역 작업 역시 꼼꼼하게 잘 다듬어진 높은 번역 수준을 보여주었으나, 프랑스에서의 출판 가능성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청장년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 프랑스 독자들에의 접근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부득이 우선 순위가 밀리게 된 점은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문장의 밀도가 느껴지는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 사이만큼이나, 흐르는 듯 유려한 문장과 여기저기 호흡이 끊기는 문장의 사이도 멀게 느껴지는 것이 우리들이 가진 일반적인 독서의 경험이다. 번역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문장 하나하나에 서린 우리 작가들의 숨결과 리듬을 살려내기 위해 역자들이 다시 한 번 힘을 모아주기 빈다.

2007년에 대산문화재단이 지원하는 “한국문학 번역지원” 사업의 독일어 부분에 신청된 전체 작품 수는 9종이었다. 장르별로 볼 때 소설 또는 산문이 7편이었고 시집과 희곡이 각각 한 편이었다. 심사위원으로 한국인 독문학 교수 1명과 독일어 원어민 교수 1명이 심사에 참여하였다.

심사위원들 간의 오랜 토론 끝에 몇 가지 기준을 확정하였다. 그것은 작품이 추구하는 주제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통하여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독일과 유럽에 소개할 수 있는 ‘한국문학의 세계화’, 제출된 번역원고 심사를 통한 번역의 완성도와 번역본의 가독성 및 번역자의 기량, 주제나 문학적 형상화가 독일 독자들의 관심과 지적 호기심을 끌 수 있는가의 여부, 독일 문학시장에서의 경쟁력, 출판가능성 그리고 독일 무대에 올려질 연출가능성 등이었다. 이외에도 다른 부수적인 요소가 있었지만 중요한 기준은 열거한 내용들이다.

위의 기준에 따라 신청된 개별 작품들을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선정을 위한 심사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뛰어난 것이었기 때문이며, 천착하는 주제 모두가 그 자체로서는 의미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신청된 작품 중에는 이미 국내에서 명망있는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들도 있었고 독자들의 호평을 받는 작품도 있었으며 또한 신선하면서도 실험적인 정신을 높이 살 수 있는 작품들이 있었다. 이외에도 중요한 고려사항인 번역본의 완성도와 번역자의 경력과 기량도 매우 우수하였기 때문이었다.

분과별 1차 심사에서 다섯 작품이 선정되었고, 다시 진행된 2차 심사에서 한 편이 탈락되고 네 편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선정되었다. 이후 모든 언어권(영어, 불어, 스페인어)이 참석한 최종 심사에서 아쉽게도 한 편이 탈락되어 독일어 작품은 최종적으로 세 편이 선정되었다. 한 편이 탈락한 이유는 타 언어권과의 형평성과 전체적으로 이미 결정된 예산상의 문제이었을 뿐이었다.

어려운 과정이었다. 선정된 작품에는 축하를 보내며, 선정되지 못한 작품에는 죄송한 마음과 함께 마음으로부터 깊은 격려를 보낸다. 여섯 편의 작품이 선정되지 못한 것은 작품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아니라 위에서 열거한 잣대로 재보았을 때 나타난 결과라는 변명이 미선정된 작품과 번역자들에게 조그만 위로가 되기를 희망한다.

늘 경험하는 일이지만 시보다는 소설이, 소설보다는 이론서가 번역이 쉽다. 번역이 쉽다기보다는 원작의 무언가를 옮겨가는 일에 더 실속이 있다는 말. 시 번역은 잘 해야 본전이고 대부분의 경우는 옮겨 놓으면 원작의 감동이 살아나지 못 한다. 원작의 리듬은 번역할 수 없는 것. 따라서 시 번역은 그만큼 창작성이 요구된다고나 할까.

이번에는 시 번역이 두 편이다. 하나는 『얼음의 자서전』(최승호 作)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현대시인 30인선』이다. 선집 번역은 쉬우면서 가장 어렵다. 마치 한 사람의 작품처럼(한 번역자기도 하니까) 선자, 역자의 개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 시선집은 성격이 없었다. 번역은 그저 무난한 수준. 그래서 나는 『얼음의 자서전』을 뽑았다. 비교적 자세하고 충실한 번역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번역의 스페인어가 살아 있었다.

소설로는 『이제하 단편선』과 『김승옥 단편선』이 응모됐다. 우선 단편선보다는 장편을 현지 독자들이 선호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원작의 문학성이 거의 고전적으로 인정 평가된 작품이어야 번역할 가치가 있다. 그런 뜻에서 이제하보다는 김승옥의 단편이 반역되어야 옳다. 다만 문어체적 번역은 원작의 살아 있는 의미를 희석화시킨다. 특히 대화를 번역할 때 대담하게 번역어의 동가치 표현에 접근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이유로 『김승옥 단편선』을 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