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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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번 2005년도 대산문화재단 영어권 번역지원심사에는 시 6편, 소설 9편, 희곡 3편, 기타 2편으로 도합 20편이 응모되었다. 심사는 2명의 심사위원 (내국인 1인 외국인 1인)에 의해 철저하고 엄중하게 진행되었다.

우선 1차 심사는 제출된 샘플 번역원고를 평가하여 번역자의 능력, 원작의 문학성, 영어권 국가의 수용가능성, 출판 가능성 등을 중심으로 심사위원별로 상호교류 없이 독립적으로 진행되었다. 좀 더 공평한 심사를 위하여 1차 심사에서는 번역자의 이름이나 경력, 기존 실적에 관한 정보 없이 번역원고를 기준으로 진행되었다. 4개의 언어권(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에서 12개의 작품을 선정, 지원하는 대산문화재단에서 제공한 심사양식에 따라 정밀하게 평가한 결과, 영어권에서는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대부분 일치하였다.

영어권의 경우 응모 번역의 대부분이 예년에 비해 일정 수준에 오른 수작이라고 볼 수 있었다. 번역본의 영문이 지나치게 어색하거나 문법오류가 많은 예는 많지 않았으나, 무분별한 축약이나 원문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직역은 여전히 문제점으로 남아 있다고 보겠다. 우리말의 특성상 영역시 지나친 반복이나 비논리성을 정리해서 번역할 필요가 있으나, 의미는 물론, 원문의 상징성이나 목소리를 해치치 않는 범주 내에서 행해져야 한다. 그러므로 번역가의 문학적 해석력이나 자질이 특별히 중요하다. 예컨대 소설의 경우 문장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읽을 때 ‘번역’처럼 느껴지거나 의미의 혼동이 오고 또는 번역가의 편리에 의하여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번역한 부분, 시의 경우 원문의 목소리나 이미지, 음악성, 상징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거나 너무 산문화 하여 번역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2차 심사는 장시간에 걸친 심사위원들의 토론으로 이루어졌고, 결과적으로 영어권에서는 시 2편, 소설 2편, 희곡 1편으로 도합 5편이 선정되었다. (장르별로 선정 작품 수가 미리 정해져 있지 않았으나 번역의 질에 따라 우연히 장르별로 골고루 선정되었음)

이성복의 <아, 입이 없는 것들>은 전년도 대산문학상 수상 작품으로서 대산 측에서 번역대상 작품으로 이미 공고한 바 있어 두 편의 번역이 응모, 그 중 한 편이 이미지와 메시지 전달에 있어 상대적으로 수작으로 평가되어 선정되었고, <고은시선집>의 번역본은 간혹 지나치게 산문적이고 목소리(아이러니, 풍자 등) 전달이 다소 부정확한 점이 있으나 전반적으로 수준급의 번역이었고, 현재 미국 거주 중인 주번역가와 공역자가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사료, 앞으로 번역의 질이 더욱 발전할 가능성을 감안하여 추천하기로 하였다.

소설 부문에서는 원작의 문학성이 높고 어느 정도 영어권 독자들의 정서에 맞는 두 작품이 선정되었는데, 이동하의 <장난감 도시>는 원작을 충실하게 번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흐름이 좋고 자연스럽게 읽혀서 우선 선정하였다. <새의 선물>은 대체로 잘 읽히고 번역가의 성의와 잠재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선정되었지만, 원작의 문장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혼동을 야기하거나 번역가가 원문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하고 번역한 듯한 느낌을 주는 어색한 문장이 간혹 눈에 띈다. 현재 원어민이 단순히 ‘교정’의 역할을 맡고 있으나 좀더 적극적으로 번역에 참여하는 ‘공역자’로서의 역할을 하여 번역본으로서의 완성도를 높일 것을 조건으로 선정하였다.

<인간문제>는 원어민의 영어로 자연스럽게 읽히기는 하지만 지나친 직역으로 매끄럽지 못한 부분과 문법적 오류가 자주 눈에 띄고, <검은 이야기>는 영어권 독자들에게 수용가능성이 크고 번역도 전반적으로 수준급이기는 하나 직역으로 영어 독자들에게 명확하지 않은 부분과 어색한 표현이 자주 눈에 띄어 ‘번역’처럼 읽히는 부분이 다소 있어 아깝게 탈락하였다. <함세덕 희곡선>은 대화에서 약간의 어색한 부분과 심리적 묘사의 정교함이 부족한 것은 20세기 초에 씌어진 원본 자체의 문제이고 영어권의 수용성이 좋고 한국의 정서를 성공적으로 옮겼다고 사료, 2005년도 대산문학상 수상작은 박상현의 희곡작품들을 번역할 것을 추천하기로 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번역자가 원어민이 아닐 경우 단지 원어민의 ‘교정’차원이 아니라 긴밀한 상호 협력 작업과 교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고, 우리말을 영역하는 작업에 있어 물론 문장 하나하나를 병행적으로 번역하는 것이 불가능한 예가 많음을 감안하더라도 번역가가 편의적으로 원문을 지나치게 축약하거나 탈락의 사유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대산 문화재단 지원에는 능력 있는 신예번역가들이 다수 진출하여 이러한 번역지원 사업의 의의를 다졌다. 탈락한 번역의 경우도 다시 새로운 작품 선정이나 더욱 세심한 번역으로 재지원한다면 차후에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가능성이 높은, 이미 어느 정도 수준에 달한 작품들이 많았다. 번역가가 작품성 있고 해당 언어권 현지의 문화적, 정서적 수용도가 높은 작품으로 지원신청을 할 때 분명 기회가 주어질 것이며, 그러한 번역가들에 의해 한국문학의 숙원인 노벨문학상 수상의 꿈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금년도 대산문화재단 한국문학 번역지원 불어권 신청은 총 8편이었다.

이 가운데 최순우 작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는 번역 수준의 검토에 앞서 일단 추천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하였다. 이 저작이 수준 높은 에세이로서 번역의 가치가 있고 한국 문화의 소개에 의미 있는 번역 작업이 되리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겠으나, 한국문학 번역의 범주에 넣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나머지 7편의 응모 작품은 시조, 시, 소설 장르의 현대문학 작품들로서 대체로 문단의 일정한 평가를 받은 수준 있는 작품들이었다. 따라서 이 가운데 번역 대상 작품 선정에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경우는 없었지만, 번역으로 외국 독자들에게 읽힐 때의 가독성이나 문학적 효과 등은 심사의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이호우 작 <개화>는 번역 수준은 무난한 편이었지만, 시조가 우리 문학 특유의 장르로서 아무래도 외국어 번역으로 읽히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다가, 상대적으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오래되었고 문단이나 일반 독자들에게 덜 알려진 편이어서 심사에서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심사 기준의 핵심은 물론 번역의 수준이었다. 번역의 기본은 정확성이다. 문체 등 문학적 효과는 정확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의역 등을 핑계로 정확성을 기하지 않는 번역은 불성실의 구실이기가 쉽다. 이번 심사 대상 작품들은 대체로 어느 정도의 번역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번역의 정확성에 의문을 갖게 만드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번역의 정확성에 의문이 드는 경우는 우선 추천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번역이 배반이란 말이 특히 강조될 수 있는 것이 시 번역일 것이다. 이번에 우리가 추천한 <김광규시선집>과 이성복의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 번역은 번역의 배반성을 극복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기에 추천했지만, 번역의 정확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실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갈고 다듬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이순원 작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은 소설 자체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불어 번역이 아주 쉽게 읽히는 편이었다. 그러나 글의 뉘앙스를 잘 살리기 위해서 더 많은 추고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말로도 읽기가 몹시 난해한 이인성의 소설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은 번역 역시 대단히 어려운 작업일 터인데, 애써 옮긴 흔적이 역력했다. 이 작품의 추천에는 동일 작가의 다른 작품 번역이 프랑스에서 이미 호평이었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이 번역은 작품의 내용 전달뿐만 아니라 작가의 문체를 살리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독일어권에는 총 여덟 편의 응모작이 있었다. 번역 대상작은 대체로 동시대 작품들이었으며 작품선정에 있어서 예년보다 향상된 문학적 안목이 엿보였다. 하지만 단편선이 많아 다소는 번역의 편의가 고려되지 않았는가 하는 짐작도 들었고, 번역자들의 한국 문학과 문화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안목은 여전히 아쉬웠다. 번역에 있어서는, 전달의 측면이 전반적으로 많이 향상되어 번역자들의 언어적 역량을 엿볼 수 있었는데, 다만 역시 문학적 감각에 대한 아쉬움이 다소 남았다. 독일인 번역자들에게서는 한국인 번역자들의 초벌 번역을 검토함에 있어서 한국어에 대한, 한국어의 문학어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이 결핍된 데서 오는 윤문의 문제가 생기는 경우들이 있었다.

앞으로의 번역에 있어 양측에 있어 문학적 감성의 측면이 향상되고 독일인 번역자에 있어 한국어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갖추기를 바래본다.

8편중 오태석의 <태>와 최윤의 <속삭임, 속삭임>의 번역이 선정되었다. <태>는 상당부분 고어로 이루어진 난해한 작품임에도 문학, 특히 희곡이라는 장르에 대한 깊은 인식과 감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전문성이 엿보여 선정되었다. 한국 역사에 대한 지식을 전제로 하며 현대적 은유성도 강한 작품이어서 실제로 독일에서의 출판이나 공연이 쉽지 않을 것이고 공연되거나 출판되어도 생소함이 따를 것이므로, 작품 이해를 위하여 불가결한 해설을 작품의 앞이나 뒤에 적절한 형식으로 덧붙였으면 한다. 드라마의 독일어 자체도 좀 더 정제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책이 될 경우의 나머지 작품 선정에 있어서 수용의 문제를 좀더 고려하기를 권고하기로 했다.

<속삭임, 속삭임>은 줄거리 전달에 있어서는 무리가 없고 잘 읽힌다. 다만 이 작품의 핵심인 문체의 섬세함이 옮겨지지 못해서 다소 문학성의 훼손을 보이고 있다. 전체적인 흐름은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부분적으로 정밀함이 결여되어 있어서 오역이나 탈자도 군데군데 보인다. 그러나 근본이 갖추어진 번역이므로 꼼꼼하고 정밀한 대조, 윤문 작업이 더해지기를 권고하기로 하고 뽑았다.

우리나라에서의 스페인어 보급도 금년으로 50년이 되었으며 스페인어 사용인구도 날로 그 폭이 넓어져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문학의 스페인어 번역 전문인력은 아직도 기대하는 만큼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이를 반영하듯 올해 스페인어권에 지원신청한 건수는 3건이었다. 그 중 이순원 作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을 지원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이 번역작품은 비교적 편안한 이야기의 전개로 별로 흠잡을만한 곳이 없었다.

다만 ‘....esta novela esta basada en las historias familiares de mi ninez, que quizas deberia haberlas enterrada y encerrada..........’라고 한 부분을 예로 들어 언급하자면, 여기에서 ‘enterrada y encerrada’는 ‘enterrado y encerrado’라고 해야할 것을 착각한 듯하다. ‘가족사’라고 할 때는 ‘historia de la familia de mi ninez’라고 역사를 단수로 해야할 것이다. 또한 원문 15쪽 세 번째 구절 ‘어른이 된 다름 안 일이지만...’으로 시작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을 나갔던 것이라고’한 구절 전체를 다시 정리하여 번역하는 것도 필요하다. 비록 우리 말은 계속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 것을 그대로 번역해나가다 보니 독자가 쉽게 따라가기가 어렵다. 가급적 독립된 문장으로 하느 둘 이어가는 것이 독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