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쉽게 씨워진 시

“살아있는 것은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도쿄 아사쿠사의 광대, 새로운 문학과 혁명을 꿈꾸었던 시인의 자화상

릴케의 천사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다

특집을 기획하며 ①시장 속의 문학 ②“비탄의 시대에 시인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③미래에 관한 회상 ④살아남기 위한 자들의 언어

빨간 장미 한 송이

최후의 북촌 구식 현모양처이자 최초의 자유 신여성

시인이 안 됐으마 제비가 됐을 꺼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을 꿈꾸었던 「천체수업」

밤하늘의 투명한 시선들

평양에 갔을 때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천의 얼굴을 가진 조선의 천재’ 허균의 『성소부부고』

역사와 예술이 어우러진 ‘바다의 땅’, 통영

문인들의 ‘목뽑기’ 풍경 셋

정의론의 방법에 대한 질문

①진한 노을,초봄 개울에서 ②기러기떼 헛 가위질하듯,한네의 승천

①동전처럼 ② 오샤와 Oshawa

사물놀이

첫 번째|뒤늦게 눈뜬 재능 두 번째|혼자 있는 시간의 고요 세 번째|합포 산호동 옛집 네 번째|매미 오줌 맞기

①제25회 대산문학상 시·소설 부문 본심 대상작 선정 ②우리 문단에 당도한 새로운 감수성

유미리의 한국어

사실의 기록보다 더 무심한 영화, ‘전장’을 온전히 드러내다

소설의 귀환과 그늘

여백을 어루만지고 퇴고하다

낯선 것을 낯설지 않게 옮기기

추리와 역사 사이에서

이 세상은 꿈, 꿈이야말로 진실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

2017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지원대상작 선정 등

나의 아버지

최후의 북촌 구식 현모양처이자 최초의 자유 신여성

- 나의 어머니 소설가 한무숙

글 김호기 ㅣ 한무숙의 장남, 한무숙문학관장. 1942년생
한무숙 ㅣ 소설가. 1918~1993년
소설 『역사는 흐른다』 『월운』 『축제와 운명의 장소』 『감정이 있는 심연』 『빛의 계단』 『석류나무집 이야기』 『열길 물속은 알아도』 『내 마음에 뜬 달』
『유수암』 『생인손』 등


최후의 북촌 구식 현모양처이자
최초의 자유 신여성

- 나의 어머니 소설가 한무숙

나의 어머니, 향정 한무숙(香庭 韓戊淑)선생이 올해 우리 나이 로 백 살이 되셨다. 세상을 떠나신 지 스물네 해가 지나 지금 내 나이가 그 때 어머니의 나이와 같아졌다. 언제 그 세월이 흘러가 버렸는지…… 새삼스럽게 광음지탄(光陰之嘆)에 빠진다. 스스로 별다른 이룸 없이 늙어가는 것이 딱하게 느껴지니 평생 최선을 다하면서 우리 문단에 큰 족적을 남기신 어머니가 새록새록 그 리워진다.
나는 어머니보다 완벽한 여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미인이라고 생각하다가 사춘기에 서양영화 한 편을 보고 거기 나오는 여배우가 어머니보다 이쁘게 보여 한동안 낙담했던 기억이 나지만, 나중에 철들어서 그때 생 각이 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되찾은 어머니가 최고라는 생각은 아마 죽을 때까지 변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할 이야기가 많겠지만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훌륭한 예술가이기에 앞서 훌륭 한 현모양처요, 훌륭한 인간이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전에 우리나라 최고의 문학상이나 훈장 같 은 것을 다 받았지만 신사임당상을 받았을 때 가장 기뻐하셨던 것이다. 옛날식으로 그 상을 받을 자격이 있겠느냐고 집안의 제일 어른이셨던 할아버지께 수상 허락을 받았다. 86세의 어른이 크게 기뻐하시며 어머니께 써주신 축하의 말씀이 한무숙문학관의 집필실 앞에 걸려있다.
신문학을 접하지 않으셨던 노인은 며느리의 문학적 업적보다는 전통 양반가의 며느리로서의 선 행을 인정하신 것이었다. 그것이 어머니에겐 그렇게 큰 보람과 기쁨이 되었다.


평시선행적(平時善行積) : 평시에 선행을 쌓더니

금일시양명(今日始揚名) : 오늘 그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는구나
어머니는 근대 우리 여성 예술인 가운데 최후의 북촌 구식 현모양처요, 최초의 자유 신여성이었 다. 어머니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소학교때 베를린 국제아동미술대회에 입상할 만큼 어려서 부터 뛰어난 예술감각을 나타냈다. 이것이 영국 선교사 눈에 띄어 미술공부를 위해 영국 유학이 결 정나려 할때 외할아버지가 서울 북촌에서 함께 자라고 같은 훈장 밑에서 공부한 죽마고우셨던 할 아버지와 아주 오랜만에 만나서 덜컥 둘째 따님과 둘째 아드님을 맺어 주시는 바람에 어머니의 인 생 항로가 졸지에 크게 바뀌어졌다. 같은 북촌의 알소론 출신이면서 개화한 외가에서 성장한 후 오 백 년 인습 안에 맴돌던 수구적인 김씨 집안에 시집오신 새색시는 영국 유학의 부푼 꿈을 접고 요 즈음 며느리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혹독한 시집살이를 해야 했다.
더욱이 신랑이란 분이 무뚝뚝하기만 하고 신학문을 했으면서도 가부장적인 ‘폭군’이어서 신부가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던 중 어느 날 신랑의 호주머니 속에서 수없이 많은 시어머니의 숙환에 좋다 는 약 광고 쪽지들을 우연히 보았을 때 일순에 신랑에 대한 사랑이 솟아났다. 그 순간 진실로 이루 어진 부부의 사랑은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53년을 한결 같이 지속되었다. 사랑의 고백 같은 것이 필요할 리가 없었다.

어떤 분들은 두 분을 “미녀와 야수”로 비유할 만큼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달랐 다. 그러나 두 분이 크게 싸우시는 것을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직선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가 자주 어머니께 심한 모습을 보이실 때도 한 번도 어머니가 말대꾸하신 것을 본 일이 없다. 그러 나 크고 작은 집안일의 의사 결정의 최후의 주인공은 언제나 어머니셨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 던가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말은 두 분 사이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부부간 이질적인 직업에 서로 간섭하지 않되 격려하며 반세기를 넘기면서 아버지는 우리 금융계 에, 어머니는 문단에 각각 큰 획을 긋고 가셨다.
선친 백농 김진홍(栢儂 金振興)공은 당신 자신도 우리나라 최초의 외환업무를 시작하였고 주택· 신탁은행의 창설 등으로 이름을 남기셨으면서도 부인이 더 유명해지는 것을 바라고 또 자랑으로 알던 보기 드문 애처가셨다. 겉으로는 우락부락하신 것 같았지만 안으로는 섬세하고 인정 넘치는 따뜻한 가슴의 사나이셨다.
선친의 성정은 남기신 수많은 서화와 수필 작품에 잘 나타나있다. 전문가들도 그 자유분방함과 섬세함이 겸비된 것을 부러워할 만큼 아마추어 경지를 넘어선 것이다. 나는 선친이 상배하신 후 열 두 해를 더 사시며, 어머니를 그리며 애통해 하시던 모습을 상기하면 열두 해가 지난 지금도 눈물 이 난다.
그런 어른들을 부모로 모셨던 나는 행운아였다. 특히 나는 50년간 함께 살아온 내자(內子)가 지 금까지도 자주 불만을 나타낼 만큼 어머니와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그 시간을 좋아했다. 어머니의 각 분야에 걸친 해박한 지식은 만날 때마다 무언가 배우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집안에는 문학지망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은 우리 문단의 거물시인이 된 황동규 형은 고등학교 때부터 방과 후에는 늘 어머니를 찾아와서 세계문학 독후감을 나누며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곤 했다.
만년에 어머니는 아버지보다도 나와 지내는 것이 편하시다고 주말에는 쭉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 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들으시면 섭섭하시겠지만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너다”라고까지 하셨 다. 나도 똑같은 말씀을 어머니께 드리곤 했다. 그러던 우리 모자를 변함없는 사랑으로 받아주신 선친과 내자에 대한 감사와 사랑은 내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또한 내가 운전해 화훼마을에 모셔 함께 꽃구경을 하며 꽃향내를 맡으며 인생을 논하고, 잠수교 를 달리며 출렁이는 한강물을 함께 바라보기도 하고, 함께 음악회에 가서 손잡고 아름다운 음율에 빠지고…… 수많은 아름다운 장면들의 추억이 앞으로 남은 나의 황혼기에 아름다운 빛이 되어줄 것 이다.
어머니가 그렇게 일찍 가실 줄 알았더라면 더 함께 모시는 시간을 많이 가졌을 것을…… 하는 아 쉬움이 남아있다. 내자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우리는 남은 시간이 더 있으니 내자에게 지난날 희생에 대한 보상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새삼스럽게 효도가 모든 것의 근본이라는 우리 동양사상의 뜻을 음미하게 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함께 40년을 사시던 명륜동의 한옥을 한무숙문학관으로 개조하 고 열두 해를 더 사시며 마나님을 그리는 책도 4권이나 발간하며 활발히 활동하시다가 어머니가 돌 아가신 바로 그 안방에서 하늘나라의 어머니와 합방하셨다.
지금은 우리 내외가 그 방에 기거하며 한무숙문학관을 관리하고 있다. 부모님들이 반세기를 사 시면서 남겨 놓으신 귀한 물건들과 그분들의 체취 와 함께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은총이다.
작은 정원에는 계절마다 꽃이 만발한다. 봄에는 철쭉, 모란, 살구 등이 있다. 그리고 여름에는 백 합, 백일홍이 가을에는 국화, 겨울에 눈 올 때는 눈 꽃이 핀다. 꽃이 피고 질 때마다 부모님도 함께 즐 기는 기분에 빠진다. 나의 마지막 소원은 부모님이 살다 가신 이 집에서 그분들의 은덕을 기리며 특히 한무숙문학 정신의 계승에 작은 힘이나마 진력하 다가 어느 좋은 날 부모님 떠나신 안방에서 하늘나 라에 계신 부모님과 다시 만나는 것이다. 나는 그 런 희망으로 오늘도 이 집과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하나가 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