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아직도 눈을 감으면

아직도 눈을 감으면 

하얗고 작은 마을이 도쿄의 꽃나무들이 

펼쳐지고 그 위에 멈춰 서 사진을 찍던 

우리의 웃는 얼굴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길이 펼쳐지고 있어요 

우리는 자주 팔짱을 끼고 걸었지요 

잠시 잡아도 될까요 물었고 끄덕였어요 

아마 그렇게 두 번째 인사를 한 것 같아요 우리는 

처음으로 함께 하게 된 곳이 

눈이 많이 내리는 삿포로여서 

참 다행이었답니다 

미끄러져서 자꾸 미끄러져서 

잡아주고 싶어져서 걸음이 느려져서 

조금 더 가까이 붙어 걷고 싶었고 그런 마음에 

경계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겨울의 삿포로에서는 

거리에서 펭귄처럼 꼭 붙어 

걸어가는 사람들을 발견할 때면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서 

요즘도 가끔 웃음이 새어 나오고 서둘러 

입술을 깨물어요 

우리 좋았지요 어디에 있든 

잠에 들기 직전까지 한 방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누워있었지요 

돌아가며 자? 

안 자, 피곤하면 자도 돼, 안 잘 거야, 

반복하고 이야기를 했어요 

문학 이야기를 사랑해가며 사는 이야기를 

하였고 술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나는 사실 그동안 혼자 조금 무서웠어 

믿기 어렵겠지만 응응 그랬구나 

이런 이야기도 가능했습니다

여름, 나경, 가현과 함께 있으면 

어디에서 무얼 하든 제법 다 

문학 같았어요 

함께 여행하는 것보단 혼자 여행하는 것이 

메시지보단 일기장이 

아직은 더 익숙하지만 

찍힌 줄도 몰랐던 여름의 뒷모습과 

나경의 꼬불꼬불한 머리카락 그리고 

가현의 장갑 낀 손이 담긴 사진들이 

사진첩에서 불쑥불쑥 

발견될 때마다 우리를, 

떠올려요 우리는 계속되겠지요 

돌아온 이곳에서도 

그럴 거예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중일 겁니다 

앞으로도 성실히 헤매면서 

함께 찾아요 우리가 

우리여야만 했던 이유를  
 

그런데 나는 이미 

많이 사랑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