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아우의 인상화 印像画

아바나, 영혼은 탈탈 털리고 심장은 도취하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의 만남 '진흙과 풀꽃'

대한민국, 2018년 늦가을

특집을 기획하며 동아시아문학 공동의 집 시간과 우리 작가와 작품, 독자와 현실의 틈새에 서서 ①주요 발제문 다시 읽기➍ 작품교류-전통 ①주요 발제문 다시 읽기➎ 작품교류-차이 ①주요 발제문 다시 읽기➏ 작품교류-미래 ①주요 발제문 다시 읽기➐ 작품교류-독자 ②한중일 동아시아문학포럼 참관기 ③한중일 대표 공동 기자간담회

“어둠 속에서 둘이서,어둠 속에서 나홀로”

차이(差異)의 매혹

강릉 유가(儒家)의 군자

쓰지 않아도 된다

길 위에서

검박한 스승, 굴산사 당간지주

동아시아와 세계, 우주에 대한 새로운 성찰

의약분업의 효시

내 글의 스승, 가스통 바슐라르

속간 《문예중앙》, 2010년 가을 통권 제123호로부터

숲은 아름답고 깊지만 내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있네

①기차를 타고 밤 약속,월동준비 ②당분간 달콤,홀로그래피

①사람 사는 집 ②네가 웃어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잊히지 않는 일들

①최근 역사 영화의 한 경향에 대해 ②그러면, 그러면, 그러면 ③주인도 제목도 없는

①시대의 아픔 위에 놓인 애도의 문학 ②제26회 대산문학상 수상작리뷰

고민과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하기 위한 노력들

소설이 묻고, 영화가 답하다

인생 리셋을 위한 자기 계발의 과학

파라나 강물 위에는 그를 기리는 꽃잎이 흐른다

한국문학 번역, 어렵고 힘들지만 “계속해보겠습니다”

강 저편과 여기

기다림의 미학

대산세계문학총서149,150

대산창작기금, 한국문학 번역지원,외국문학 번역지원

대산문화재단 신창재 이사장 은관문화훈장 수훈 등

대산초대석

시인은 청진기, 아픔을 듣고 붉은 꽃을 처방한다

- 김승희 시인과의 만남

글 이혜원 ㅣ 평론가, 고려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 1966년생
평론집 『세기말의 꿈과 문학』 『적막의 모험』 『지상의 천사』, 저서 『생명의 거미줄』 『자유를 향한 자유의 시학-김승희론』 『현대시의 윤리와 생명의식』 등
김승희 ㅣ 시인, 평론가,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1952년생
시집 『태양 미사』 『왼손을 위한 협주곡』 『미완성을 위한 연가』 『달걀 속의 생』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냄비는 둥둥』 『희망이 외롭다』 『도미는 도마 위에서』, 소설집 『산타페로 가는 사람』 등


● 선생님, 안녕하세요. 퇴임 후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 뵙고 인터뷰까지 하게 되어 참 반갑습니다. 먼저 근황부터 여쭤보고 싶습니다. 2017년 8월 서강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시고 그해 9월부터 석 달 동안 이탈리아 베네치아 카포스카리대학교에서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로 지내셨다고 들었습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어떤 경험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김승희  이혜원 선생님, 반갑습니다. 선생님께서 2012년에 소명출판사의 ‘여성작가 연구총서’ 시리즈에 『김승희론: 자유를 위한 자유의 시학』을 써주셨는데 이제야 뵙게 되어 너무 송구해요. 늦어도 너무 늦었지요?(웃음) 베네치아 카포스카리대학에 가게 되어 3개월 체류하고 왔어요. 베네치아 참 아름다운 도시인데, 너무 아름답고 탐미적이고 향락적이고, 마치 이탈리아의 달콤한 아이스크림 젤라또처럼, 순간의 쾌락을, 다채로운 색채의 카르페 디엠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 깊은 죽음을 담고 있는 걸 느꼈어요. 이상해요. 베네치아 풍의 문화에는 늘 순간의 아름다움과 죽음이 들어 있어요.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라는 성당이 있는데 1629년 베네치아에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페스트를 물리쳐달라고 신에게 기도했고 페스트가 물러가자 신에게 감사를 드리기 위해 지은 성당이지요. 그렇듯 아름다움 속에 죽음을, 어두운 메멘토 모리를 간직하고 있어요.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베네치아가 품은 그 찬란한 양면성이 이상하게 사람을 철학적으로 만들더군요.

● 철학적인 시간을 보내셨다니 아주 잘 지내셨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외국에서 생활하신 경험이 많으시지요. 외국에서 많이 지내실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요? 또 외국 체류 경험이 시를 쓰는 데는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고 싶습니다.
 김승희  시적 지향이란 기본적으로 일상으로부터의 탈맥락화라는 점에서 여행이나 해외체류 같은 것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해요. 90년대 초반엔 사는 것이 너무 팍팍하고 힘들어서 바깥으로의 탈주를 꿈꾸었어요. 제가 그 당시 출간했던 시집이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1992, 세계사)라는 제목이었으니……. 당시의 갑갑한 심정을 잘 보여주지요. ‘바깥=외국’인 것만은 아니지만 제목부터 좀 그렇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바깥’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요. 당시 미국 최대 통신회사 AT&T의 후원으로 ‘아이오와주립대학교 국제창작프로그램’에 가게 되었는데 당시의 경험을 쓴 「산타페로 가는 사람」이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되기도 했어요. 버클리대학에는 풀브라이트 시니어 그랜트를 받고 1995년 간 것이고 마침 기회가 생겨서 한국문학 강의를 맡아서 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바깥에 나가면 자유로울 것 같지만 외국에 나가면 때로 ‘나=한국인’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에 고정되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도 ‘차이니스’가 되는 일도 있어서 오히려 정체성의 협소함을 느끼게 되고 자유가 없어진다는 것도 느꼈지요. 여행을 많이 할수록 느끼는 것은 바깥에 나가도 또 바깥이 있다는 것. 바깥에 나가면 외국어의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웃음). 결국 진정한 ‘바깥’은 죽음뿐이 아닐까…….

● 외국에서 오히려 정체성의 협소함을 느끼셨다는 말씀이 뜻밖이면서도 또 그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깥에 나가 있으면 또 다른 바깥이 더 분명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이제 평소 선생님 시에서 궁금하게 생각했던 점들에 대해 좀 여쭤보겠습니다. 선생님의 시를 보면 일상과 경험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작품들도 많지만 미술과 음악, 사진 같은 인접 예술에서 받은 깊은 인상을 담은 작품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술작품에 대한 감수성이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반응이 깊고 강렬한 경우가 많은데요, 이런 예술에 대한 감수성이 시를 쓰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승희  아마 예술치료에 제가 심각하게 의지하고 있어서일 거예요. 모든 텍스트란 상호텍스트(줄리아 크리스테바)이니까 저의 시에도 미술과 음악, 사진 등의 영향이 들어있어요. 사실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던 제 등단 시 「그림 속의 물」에서부터 예술치료적인 영향, 지향을 보여주고 있어요. 1972년 가을에 10월 유신이 발표되고 유신독재 구축 초기에 긴급조치가 발호되던 그 무시무시한 시절에 그런 시를 썼으니 제 신춘문예 당선작에 대해 몽롱시다, 전형적인 신춘문예 스타일의 시, 의미 없는 환상시…… 등 부정적 평가가 많았어요. 그 당시는 참여시, 현실비판, 민중문학이 강한 시기였거든요.

● 그러니까 「그림 속의 물」을 바로 그 1972년 가을에 쓰셨군요. 1973년도에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하셨으니까요.
 김승희  네, 바로 1972년 11월에 그 시를 썼어요. 어지간히 정치적으로 어지러운 시절이었죠. 그 시는 동화 『플랜더스의 개』와 상호텍스트성을 보여주는 시인데 플랜더스 혹은 플랑드르는 유럽의 전쟁터라고 불릴 정도로 전쟁이 많은 지역이라고 해요. 그런 전후의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화가가 되기를 꿈꾸는 가난한 소년의 이야기지요.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집도 없어지고 극심한 가난과 병으로 죽게 된 소년은 개 파트라슈와 함께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앙트워 대성당에 있는, 달빛에 비친 루벤스의 그림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죽어가잖아요. 그 비참한 결말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행복한 미소는 ‘예술이 생(生)의 비참을 구원한다’는 명제였어요. 그 슬픈 동화에서 제가 꿈꾸었던 예술치료 그런 것을 보았던 것 같아요. 기법으로 말한다면 차용(借用)이랄까, 혹은 인유(引喩) 같은 것. 현실이 너무 암담하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예술의 치료적 힘에 간신히 의지했고 저는 지금도 다양한 장르의 예술치료적 힘에 많이 기대고 있어요.

● 말씀대로 선생님의 시는 등단작부터 예술의 힘에 대한 강한 믿음이 깃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하셨던 인터뷰 중에, “시가 나를 쓸 때는 해방감이 있고 자유롭고 절묘한 언어의 전율이 나오는데, 내 힘으로 쓰려고 했을 때는 굉장히 고통스럽고, 생경하고 관념적인 것이 되고 만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지금까지 시를 쓰면서 내가 아닌 뮤즈가 쓰는 듯한 신기한 경험이 있으셨을 듯한데 그런 경험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김승희  ‘뮤즈’가 쓰는 경험이라고 하시니 좀 벅찬 질문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시인이 시를 쓰다 보면 자신을 뛰어넘는 어떤 힘을 느낄 때가 있어요. 특히 리듬이 강한 시를 쓸 때면 마치 파도를 타고 있는 듯이 언어가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망망대해를 언어라는 뗏목에 의지해서 표류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내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나를 쓰고 있는 듯한 환각적 기분이 들고 자유연상이 넘실대는 듯한 그런 분위기. 제 시 중에 어떤 단일한 사고나 형태론적 완결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듯한, 그냥 말과 말이 자유발랄하게 움직이고 시인은 무심히 무책임한 듯한, 그런 시들이 더러 있어요. 시인의 능동성이 아니라 언어의 능동성이요. 그런 시가 더 좋았던 것 같아요.


● 선생님의 시에서는 풍부한 감성 못지않게 이성적인 냉철한 판단력이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대상을 포착하는 날카로운 지성의 작용은 선생님의 시를 추동시켜온 강한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선생님은 시인일 뿐 아니라 문학연구자로서도 중요한 업적들을 쌓아오셨습니다. 다른 시인들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은 시 창작과 어떤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께서 영향을 받았거나 또는 영향의 불안을 느꼈던 강력한 시인들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승희  영향을 받았고 영향의 불안을 느낀 시인이라면 우선 이상이나 김수영, 그리고 실비아 플라스 등이 떠오르는데요. 1980년대 이후에는 최승자, 김혜순, 고정희 시인 등 젊은 여성시인들이 서로 강렬한 목소리와 그로테스크한 개성으로 한국시에서 낯선, 놀라운, 새로운 여성주의 시라는 최전선을 밀고 나갈 때라, 영향의 불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영향의 격려를, 상호주체적(intersubjective) 교감을 깊이 느꼈던 것 같아요. 사실 지면에서 시만 읽었지 그 시인들을 만나본 적도 없었죠.

● 상호주체적인 교감이라니 참으로 훈훈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문학의 최전선에서 전력을 다하며 느끼는 동지애 같은 것이었겠네요. 사실 선생님은 소설가이기도 하고 수필가이기도 하시죠. 어쩌면 문학과 관련된 거의 모든 활동을 해 오셨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이렇게 성격을 달리하는 글을 쓰실 때 어떤 동기가 작용했었는지…….
 김승희  시는 우리의 무의식에서 분출되는 것이라 충동적일 것 같고 문학연구는 아카데미 담론이기 때문에, 크리스테바의 말대로 상징계의 언어와 로고스의 논리가 우선하는 것이지요. 그런 맥락에서 저의 언어는 기호계(무의식의 언어)와 상징계(논리적 언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왕복 추(錘)의 궤적을 그려온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집과 학교 연구실만을 오가는 지극히 단조로운 생활을 오래 해왔는데요. 그저 고3 여학생처럼 살아왔고 지금도 고3 여학생처럼 살고 있어요. 저의 딸이 어렸을 때 “엄마 오늘도 마감 날이야?”하고 불안하게 묻던 그런 아픈 기억들이 있어요. 늘 마감 날처럼 살아온 것 같아요(웃음). 사실 요즈음엔 급한 일이 없는데도 마음이 늘 고3 학생 같으니 뭔가 잘못된 것 같고요(웃음).

● 그동안 계속 고3 여학생처럼 사셨다니 마음이 찡합니다. 앞으로는 좀 여유 있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시인으로서 선생님은 일찌감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특히 1980년대에 이르면서 본격화되는 여성주의적인 시를 대표한다는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선생님을 비롯해서 고정희, 최승자, 김혜순 같은 1980년대 여성시인들은 전 시기의 김남조, 허영자, 홍윤숙 같은 시인들이 보여주었던 여성적이고 섬세한 서정성이 두드러진 시들과 확연하게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죠.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여성 해방의 의지도 분명하게 드러내는 변화가 생겼다고 보는데요. 1980년대 당시에도 이런 변화를 느끼셨는지요? 이런 변화의 계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김승희  그 변화는 고정희 시인이 일찍이 지적한 대로 70년대, 80년대의 민주화 운동과 궤를 같이 했던 것이라고 봅니다. 민주화 운동이 권력/민중, 자본/노동, 중심/주변, 남성/여성이라는 권력의 이분법적 체계에서 그동안 억압되어 왔던 약자들을 해방시키고자 했던 그 변혁의 시기에 여성문학도 ‘여성주의’문학으로 전환을 하게 되지요. 그 선구자로 고정희 시인을 주저 없이 들 수 있고요. 여성의 새로운 존재론을 새로운 목소리와 반란의 수사학으로 노래했던 아방가르드적 시인이 최승자, 김혜순 시인……. 저는 그렇게 봅니다. 아방가르드라고 하면 시적 기법이 모던하다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법만으로는 그저 유희적일 뿐 아방가르드가 될 수 없어요. 아방가르드가 되려면 새로운 위반의 언어 안에 반드시 정치적 맥락이 들어있어야 하는데 80년대 여성시는 정치적인 것과 놀라운 언어의 최전선이 들어있어서 아방가르드가 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 격동의 시대와 함께 하는 정치적 감각과 언어적 감각이 모두 작동했기 때문에 1980년대 여성시인들이 그토록 확연한 변화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이해가 됩니다. 이처럼 1980년대 여성시인들이 그 선배 여성시인들과 다르듯이 1990년대 이후에 등단한 후배 여성시인들도 1980년대 여성시인들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후배 여성시인들을 보면서 어떤 점이 다르다고 느끼시는지요?
 김승희  많이 달라졌지요. 우선 80년대 여성시에 비해 읽기에 편안하고요. 80년대 여성 시인들을 ‘크라잉 시스터즈’라고 재미있게 표현해 본 적이 있는데 그 시절의 여성시를 읽으면 숨이 가쁘잖아요. 그런데 요즈음 젊은 여성시인들의 시는 일단 부르짖음이 내면화되어 있고 표현도 간접화되어 있어요. 또 문체나 스타일, 비유, 어조, 말하는 방법 등 레토릭이 엄청나게 암시적이고 세련되었어요.

● 그렇게 볼 수 있겠네요. 선생님의 최근 시 중에 「세상의 걱정 인형」이라는 시가 있지요. 거기에 “시인은 세상의 걱정 인형 / 지상의 모든 어두운 걱정을 담당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선생님은 타인의 고통에 매우 민감한 편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생각납니다. 그동안 선생님께서 써오신 시 중에는 외면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을 다룬 시들이 많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정신대 할머니들이나 전 세계의 고통 받는 여성들 이야기를 비롯해서 최근에는 세월호와 미투 문제에 이르기까지 약자들이 받는 고통에 늘 관심을 기울여 오셨습니다. 시인이 타인의 고통에 유난히 민감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또 이러한 현실적 관심과 미학적 거리 조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승희  시인이나 지식인은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세상의 불의와 불행에 대해 강렬한 관심을 쏟는 그런 부류의 사람인데, 사실 저는 어느 경우는 세상의 불행에 지나치게 감응하고 또 어떤 때는 내가 공감능력 결핍인가 할 정도로 무관심하기도 해요. 그러나 시인은 본질적으로 세상의 어두운 면에 감응하는 존재이기에 “지상의 모든 어두운 면을 담당하는 걱정인형”이 되기도 하고요. 그것을 시인 이상은 ‘나는 집밖에 내다버린 제웅’이라고 노래했지요. 집안의 걱정을 모두 담당시키고 바깥에 내던져 태워버리는 짚으로 만든 제웅이라고요. 사실 미학적 거리 조정, 그것이 제일 문제인데요, 소재가 내 몸의 것으로 육화되기 전에 성급하게 써버리면 관념적이고 생경하게 되어서 시로서는 반드시 실패한다는 교훈을 스스로 느껴요. 거리조정의 실패에서 오는 거겠죠.

● 역시 시인들은 세상의 ‘걱정인형’이네요. 이상도 자기 자신을 ‘제웅’이라고 했으니 집안의 걱정을 담아 밖에서 태워지는 ‘걱정인형’이었던 셈이고요. 그런데 선생님의 최근 시들은 긍정적이고 따뜻한 느낌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꽃피는 아몬드 나무」에서도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들에 대해 거리가 멀어질수록 러브 트라이앵글이 커진다고 쓰셨고, 「멍게」에서도 “이제 더 잃을 것이 없는데 / 다 끝나서 속이 시원하다는 듯이 / 속없는 멍게가 노랗게 웃는다”고 쓰셨습니다. “자작자작 자작나무 타는 소리를 심장의 운행 속에 들으며 / 자작자작 타는 심장의 잉걸불 소리에 언 몸을 녹이며 / 그 사랑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자 한다”는 「자작나무 자작자작」도 참 아름답고 따뜻한 시입니다. 이 밖에도 많은 시들에서 사랑을 확신하고 삶을 긍정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그럴만한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김승희  결국 문제는 죽음이겠죠. 죽음을 가까이 생각할수록 죽음 앞에서 예찬할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앞서 베네치아의 아름다움 속에는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가 동시에 드러난다고 했던 것처럼, 죽음에 가까울수록 사랑의 의미와 강렬함이 절박해질 수밖에 없어요. 검은 곤돌라를 타고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신부가 베일을 흩날리며 떠날 때 문득 ‘배가 새고 있다’는 문장이 떠올랐던 것은 아마도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의 양면성, 즉 인간의 비극적 조건을 제가 슬퍼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 선생님 말씀처럼 사실 슬픔을 알아야 기쁨도 알고, 죽음이 가까울수록 사랑이 애틋해지는 것이겠지요. 그동안 선생님의 시에서 궁금했던 것 중에 부사어 사용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그래도’를 비롯해서 ‘하물며’, ‘부디’, ‘아직’, ‘이미’, ‘어쨌든’, ‘비로소’, ‘아랑곳없이’, ‘하필’ 등 많은 부사어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고 부각시켜 오셨습니다. 부사어에 특별히 관심을 갖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승희  한때 부사어에 매달려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부사에 대해 많이 썼어요. ‘그래도’는 역전(逆轉)의 접속부사죠, ‘그래도’라는 부사어에 의지해서 손바닥에 피가 맺히도록 ‘그래도’라는 말을 쥐고 살아온 세월이 있습니다. 언어의 기적이었죠. 이 접속부사는 절망에 희망을 연결시키고 자아를 타인과 접속하게 하지요. 또 한편으로는 오직 부사만이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생각을 했어요. 같은 행위를 할 때도 부사는 인간의 동작을 변화시킨다, 부사는 세계관이다,라는 그런 단순한 생각에서 부사에 관심을 가졌지요.

● 아, 역시 부사에서 각별한 힘을 발견하셨던 거네요. 그래서 그런지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같은 시를 읽으면 정말 따뜻해지고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달 전 발표하신 글 「한국 현대시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면 선생님께서 등단하셨던 1970년대와 ‘한국시의 르네상스’라고 할 만한 1980년대의 분위기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회 정치적으로는 무척 엄혹했던 시대였지만 시인과 독자의 꿈과 상처가 일치하면서 큰 반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시기에 내놓았던 『태양 미사』, 『왼손을 위한 협주곡』, 『미완성을 위한 연가』, 『달걀 속의 생』 같은 선생님의 시집들도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많이 읽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70~1980년대와 그 이후 시집을 내면서 독자의 반응에서 어떤 변화를 느끼시는지요?
 김승희 솔직히 요새는 독자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거의 반응이 없으니까요. 아무도 읽는 사람이 없고 아무 반응도 없으면 유령 시인이 되는 것인데……(웃음). 『왼손을 위한 협주곡』(1983)과 『달걀 속의 생』(1989)은 상당히 많이 읽히고 많이 팔리기도 했었는데요. 그것은 1980년대가 엄청난 시의 부흥기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제가 당시에 연재했던 자전적 에세이 『33세의 팡세』가 좀 인기가 있었기에……(웃음).

● 『33세의 팡세』는 정말 강렬하죠. 거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으로 읽었던 것 같아요(웃음).앞서 언급한 글에서 선생님께서는 “시인은 꼭 필요한 천사”라는 월리스 스티븐스의 말을 패러디해서 “독자가 있어야 시를 살아 있는 언어로 만들 수 있고, 시인의 상상력이 우리의 삶 속으로 흘러드는 꿈으로 육화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독자와 시인의 꿈과 삶이 서로에게 흘러들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김승희 스티븐스의 말처럼 신은 세상을 약간 불완전하게 만드셨기 때문에 그 미완을 보충하기 위해 시인의 상상력이 천사처럼 필요하다,는 것인데 저는 시에서 독자는 꼭 ‘필요한 천사’라고 말을 바꾸어보았어요. 독자가 없으면 시는 죽은 종이에 불과하지요. 요즈음 극단적인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데 그런 때일수록 오히려 시를 읽어서 인간 보편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언어의 기적으로요.

● 독자들이 시인들을 ‘걱정인형’으로 잘 활용하면 좋을 텐데요……(웃음). 얘기 듣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러서 앞으로의 계획을 여쭤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김승희  2월 중순에 이집트 카이로에 갑니다. ‘카이로 문학 페스티벌 2019’에 초대를 받았어요. 시집 『달걀 속의 생』 아랍어 번역본이 2015년도에 이집트에서 출간되었고 올해 중 『희망이 외롭다』(가파르 아랍어역)도 출간 예정이라서 겸사해서 가게 되었어요. 사실 이제 건강이 좋지 않아 장거리 비행이 힘들고 수면 장애가 심해서 시차가 큰 곳은 가기가 두려운데 그냥 다녀오려고요. 피라미드랑 클레오파트라의 석류도 보고 싶고요. 이혜원 선생님, 긴 시간 동안 고맙습니다.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