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사랑의전당殿堂

세비야, 유쾌한 열정과 빈티지의 황홀

“외교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예술”

파리-평양-서울을 달리는 평화열차를 꿈꾸며

한국인의 의식현상학, 시험판

이상 소설 「날개」 이어쓰기 ①사이렌이 울릴 때 ②마지막 페이지 ③1교시 국어영역 ④우리들은 마음대로 ⑤진술에 따르면 ⑥대합실에서

“역사를 알 때 예술의 추상주의를 알 수 있다”

총·균·새

모든 시들이 등단작이다

1977년 매일신춘문예 시상식

다 락

불교 진리를 향한 끊임없는 여정

울음에 관하여

감동은 현실을 구원하는가

태양이 한 마리 곤충처럼 밝게 뒹구는 해질녘, 세상은 한 송이 꽃의 내부

①만찬 ①그럴 때가 있다 ②절 전화 ②고구마의 말

①북쪽 별을 찾아서 ②미래과거시제

첫 번째|마침표 유감 두 번째|아주 흔한 위로 세 번째|텍스트와 세계 네 번째|집을 떠나 집으로

①전후 국가재건 토목사업에 헌신한 ‘후반기’ 모더니스트 ②시대를 풍미한 『얄개전』을 쓴 딸바보 ③시와 후학과 커피를 사랑한 ‘동해안의 시인’

그리운 예술가(藝술架)

되돌릴 수 없는 7년, 되살리지 못한 7년

조선미술전람회와 사군자

치명적인 것들

다채로웠지만 2% 부족한……

탄뎀번역을 소환함

“말로 놀라게 하지 않으면 죽어서도 쉬지 않겠다”

라틴아메리카에서의 타는 목마름

대산창작기금,외국문학 번역지원

2018 외국문학 번역지원 공모,수요낭독공감 6월 행사 등

기획특집

⑤진술에 따르면

글 임현 ㅣ 소설가, 1983년생
소설집 『그 개와 같은 말』 등













1.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투신한 사내의 신원은 다음 날 오후쯤 확인되었다. 변사 사건의 경우, 시기를 놓치거나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자칫 수사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컸는데 사망 후 수개월이 훨씬 지나 발견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어렵사리 신원이 확보된다고 하더라도 대개는 무연고자들이라 유족들 과 연락을 하는 데만도 무진 애를 먹어야 했다. 그러나 금번 미쓰코시 사건의 경우는 보다 단순한 편에 속했다.
무엇보다 목격자가 있었다. 미쓰코시를 바라보는 쪽으로 도로 하나를 건너 동냥하던 자였는데, 그 는 당시 사고자가 백화점 옥상에서 스스로 뛰어내리는 걸 똑똑히 지켜보았다고 증언했다.
“혼자서? 누가 뒤에서 떠밀었다거나 위해를 가했다거나 하는 것 없이?”
내 질문에 그는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옥상 난간에 한참을 서 있길래 이상하다 싶었거든요. 저러다 무슨 일이 나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의 말을 나는 수첩에 받아 적었다. 그러고는 잠깐 우리가 선 자리에서 사고 지점인 미쓰코시의 옥상 쪽을 바라보았다. 이런 곳에 누군가 뛰어내린다면, 보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할 정도로 번화한 거 리였다. 정황상 타살을 의심할 만한 점은 거의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의문이 남았다.
“그런데 자네는 평소에도 저곳을 자주 올려다보는 것인가?”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경부 나리?”
어쩐지 그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일부러 보지 않으면 어려울 정도로 높은, 저 옥상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었 다는 건가?”

살인 사건은 크게 두 가지의 동기로 나눌 수 있다. 치정 문제이거나 돈 문제이거나. 복잡하게 얽혀있는 듯 보여도 풀어놓고 보면 결국 거기서 거기라는 뜻이다. 둘 모두일 수는 있어도 둘 중 어느 것도 관련되지 않는 경우는 경험적으로 거의 없었다. 아내가 살해됐다면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최초 신고 자인 남편이 될 것이고, 미혼자라면 금전관계부터 먼저 추적하는 게 순서였다. 사태를 되도록 단순하 게 보는 것. 그것이 범죄와 범죄자를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인 셈이다. 그러나 다만, 이것도 살해 혐의를 물을 수 있는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고 이번 미쓰코시에서 일어난 자살 사건과 같은 사례라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되었다. 용의자를 대하는 것보다 유족을 대하는 일이 나로서는 훨씬 더 난감한 문 제였다. 의심보다 위로를 하는 상황이 더 복잡한 감정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경시청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미망인은 사체를 확인하기 위해 공시소를 찾았다. 이후로 형식적인 절 차가 남아 있었는데, 신상을 확인받고 사망자와 관련된 사무적인 질문을 하는 일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힘드시겠지만, 몇 가지 여쭙겠습니다. 혹여 부군께서 평소와 다르게 행동한 점은 없었습니까?”
미망인은 내 물음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한참 동안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할 말을 고 른다는 인상이었으나, 나는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이윽고 미망인의 입이 열렸다.
“근래 들어서 자주 외출을 했어요.”
“특별히 누굴 만났다고 하던가요?”
“아니에요. 그냥… 돈을 주고 싶었다고 했어요.”
“돈이요? 누구에게 말입니까? 그게 무슨 돈이었는지 짐작 가시는 데라도 있어요?”
어렵게 시작된 대화는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다시 깊은 정적 속으로 빠져버렸다.
타살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으므로 수사는 얼마 가지 않아 단순 자살 사건으로 종결될 공산 이 컸다. 사망자의 방에서 발견된 다량의 아달린 역시 평소 그의 심리상태가 몹시 불안정했다는 점을 뒷받침해 주었다. 그런데도 지금 이 미망인의 표정은 내가 오랫동안 보아온 여느 범죄자들의 것에 더 가까워 보였다. 눈에 띄게 불안해했다. 이윽고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더니, 무어라 중얼거렸다. 아 주 작고 메마른 목소리였으나 그 짧은 순간을 나는 결코 놓치지 않았다.
“뭐라고요? 방금 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시 한 번 말씀해보세요.”
“아무래도 내가… 그 사람을 죽인 것 같다고요. 내가요, 내 남편을… 그래요, 내가 그랬어요.”
줄곧 바닥을 향해 있던 고개를 들어 올리며 그녀가 보다 또렷한 음성으로 말했다. 미망인의 시선은 분명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를 보는 것인지 더 먼 곳을 보고 있는지 만큼은 분명치 않았다.
그러고는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될 때까지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후략)

*본 원고의 전문은 대산문화 <여름호>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