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내 사명… 월드컵 우승의 초석이 됐으면… - 차범근 감독과의 만남
눈부처를 바라보며 화쟁의 길을 묻다 - 원효대사와의 가상 인터뷰
특집을 기획하며｜B급, 非급, 秘급 ①B라는 말로 우리가 진짜 말하고 싶은 것들 ②비(秘)급을 향해, 그저 온전한 의지로서 ③비급 작가로 살기 ④도서출판 b, b급 맞습니까?
앙스트블뤼테(Angstblüte)와 말년의 양식(Late Style)
무화되는 품위, 최선을 다하는 삶과 역사 - 2017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 『남아 있는 나날』
고전 산문의 마지막 불꽃 - 조선 한문학의 마지막 대가 정인보의 『담원문록』
“사랑, 추억 그리고 비애에 대한 거장다운 통찰” - 아일랜드의 맨부커상 수상작가 존 밴빌과의 만남
아이들의 팽팽한 마음 튀어오르는 몸 그 샘솟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
①강남 스타일,백 년 동안 새로운 노년 ②눈 내리는 거리,묘지 식탁
첫번째｜시인의 나무 세번째｜술과 글 두번째｜'문학'하는 요괴를 바라보며 네번째｜문학이 죽으면 성실해지겠죠
①자신의 세계, 건강함 그리고 작가의식 ② 우리의 우리에게… 점과 점을, 잇는 선, 으로 이루어진, 육면체. 그 안에, 가득 차 있는, 몇 개나 되는, 서로 다른, 세계. 그리고, 빛에 대해
이 방에 어떤 생이 다녀갔다 - 소설집 『이 방에 어떤 생이 다녀갔다』
‘소년이 온다’에서 ‘인간의 작품’으로 - 독역 한강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리뷰
번역의 출발선과 마침표에 대하여 -영역 이성복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
찬바람 부는 문학계
글 김규식 ㅣ 매일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1983년생
문학은 치유를 말하기보단 아픔을 끊임없이 끄집어내는 작업일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아픔을 이겨내야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겨울은 아마도 현실이 주는 아픔에 짓눌린 때인 것 같다. 겨울을 이겨내야 봄이 온다. 상처를 치유할 때까지 좀 더 아파야 할 것만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각종 추문으로 분위기는 냉랭하지만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의 마음까지 얼어붙지는 않을 듯하다. 무엇보다 여성 작가의 선전이 눈에 띈다. 소설가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은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로 진입하고 있다. 50만 부를 돌파한 지 석 달째를 맞은 2월에도 여전히 많이 읽히고 있다. 문학계 현실과 조남주의 선전은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여성의 상처를 다루는 작품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소설가 김애란이 지난해 6월 발표한 소설집 『바깥은 여름』(문학동네)도 선전하고 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이상 창비)는 이미 스테디셀러에 올랐다.
여성 작가의 활약은 올해도 이어질 것 같다. 특히 소설가 오정희가 기대를 모은다. 그는 오랜 침묵을 깨고 올해 창작 활동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과작으로 유명한 오정희기 때문에 새로운 작품을 기대하는 독자들이 많다. 지난해 12월 발간한 『오정희 컬렉션』(문학과지성사)은 그가 새롭게 시작하려고 지난 세월을 매듭지은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 든다. 올해 중편과 장편 하나씩 발표할 계획이라고 한다. 찬바람 몰아치는 문학계에 따뜻한 소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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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박준 시인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난다) 같은 산문도 꾸준히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 시집으로는 김광규 시인이 펴낸 시선집 『안개의 나라』(문학과지성사)가 주목을 끌었다. 대중소설 가운데는 소설가 김진명의 『미중전쟁』(쌤앤파커스)이 인기를 끌었다.
외국 작가의 작품은 편차가 심하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지난해 출판계를 뜨겁게 달궜는데 열기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워낙 다작하는 작가인 때문인지는 몰라도 수많은 베스트셀러가 눈에 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그대 눈동자에 건배』(이상 현대문학), 『가면산장 살인사건』(재인)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댄 브라운의 『오리진』(문학수첩), 기욤 뮈소의 『파리의 아파트』(밝은세상)와 같이 고정 독자층을 보유한 외국 작가의 작품도 빼놓을 수 없다. 다만 『오리진』은 다른 나라에서 화제를 모은 만큼 국내 인기로 이어지지 않았다. 성공의 공식을 지나치게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한국 대중소설 작가 가운데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인기를 끈 작가는 눈에 띄지 않았다. 김진명의 소설은 꾸준히 읽히고 있지만 화제를 일으키지는 못했다. 대중문학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은 바꿨으면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일본은 순수문학 작품에 수여하는 '아쿠타가와상'과 함께 대중문학 작품에 '나오키상'을 수여한다. 이는 고스란히 콘텐츠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면 한국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해 상을 수여하고 있지만 문학만큼은 정부가 주도하면 권위가 떨어진다. 민간단체에서 한국판 나오키상을 고려해 보면 어떨까 싶다. 한국 대중소설의 상상력은 이미 웹툰으로 넘어간 듯하다. 웹툰이 일반 독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르인 이유도 분명 있을 것이다. 다만 무협, 추리, 공상과학과 같은 다양한 장르의 문학이 창작되지 않는 것은 분명 아쉽다.
여러 작품을 읽으며 독자는 후끈한 겨울을 보내고 있지만 문학계 전체는 겨울을 맞았다. 최영미 시인이 성폭력을 고발한 뒤로 따가운 시선이 문학계 전반을 향하고 있다. 혹자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의 얘기로 치부하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하지만 부분과 전체를 따질 사안은 아닌 듯하다. 그만큼 가해자가 누렸던 권력이 컸다.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Me Too)’ 운동은 피해자가 피해를 입었다고 말하지 못하게 한 억압, 그리고 이에 대한 반발에서 왔다. 문학은 권력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독자를 사로잡는다. 정작 문인들이 권력을 이용해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은 괜히 나오지 않았다. 문학계를 관찰하는 기자 입장에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문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기자도 그런데 일반 독자들의 실망은 더욱 클 것이다. 여성 문인들이 문학계의 고질적인 저질 성문화를 꼬집는 만큼 자정이 필요할 것 같다. 문단의 권력이 아닌 작품으로 작가를 평가하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한국 문학계는 너무 쉽게 우상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모두가 알면서 묻어뒀던 것으로 치면 언론인의 잘못도 클 것이다. 모든 부조리에서 언론은 공범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앞으로 문학계에 만연한 성폭력을 적극적으로 고발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투 운동은 내가 피해자라는 고발에 국한할 것이 아니다. 나 또한 가해자일 수 있다는 반성의 미투 운동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